문화에디터 초등학교 3, 4학년이 되면 대도시 아이들의 절반 정도는 과학 꿈나무가 된다. 도시에 모여 있는 학원가가 일제히 과학고 영재고를 향해 달려가는 열차의 출발 휘슬을 울리기 때문이다. 지금 올라타지 않으면 과학고 영재고로의 도착은 없다고 몰아세우는 분위기에 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주섬주섬 지갑을 연다. 물론 그렇게 트랙에 오르는 부모 모두가 우리 애는 과학 영재라는 확신으로 달리는 건 아니다. 차라리 요즘 영재는 10%의 재능과 90%의 지원으로 만들어진다는데 우리 애가 부모의 무관심 속에 영재가 될 가능성, 즉 영재고나 과학고에 합격할 기회를 놓칠까 걱정되는 마음에 나서는 쪽이 더 많아 보인다. 나 역시 3등칸이라도 타고 봐야지라는 심정으로 몇달 전 아이를 수학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고작 초등학생이니 맛보기나 한번 보여주자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일단 발을 들여놓은 사교육 시장은 잡은 물고기는 놓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온갖 불안 조장성 제안을 해댄다. 방학을 앞두고 선행학습과 사고력 심화, 영재원 준비 등등 특강 문자폭탄이 쏟아진다. 이 모든 강좌 앞에는 ‘과학고 영재고’라는 말이 붙어 있다. 여기에 상담이라도 했다가는 “어머님, 친구들은 벌써 한참 앞서 달려가고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퍼덕퍼덕 싱싱한 월척으로 낚이는 수가 있다. 이 트랙에 올라타면 괜한 부모의 욕심에 애만 잡고, 사교육 시장의 착실한 호구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근심스러워 실제 아이를 과학고 영재고를 보냈던 주변 부모들에게 물어봤다. 언제쯤 아이의 영재성을 파악했나, 얼마나 아이에게 투자를 해야 하나. 질문의 내심에는 그래도 영재는 타고나는 거겠지, 사교육이 만드는 건 아닐 거야라는 기대가 들어 있었다. 물론 나에게 답한 사람 중 누구도 사교육이 영재를 만드는 거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사교육 없이 과학고 영재고 입시는 준비할 수 없다는 게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지금 과학고 영재고 입시는 빨리 보는 서울대나 스카이 입시 같은 거야. 한해에 2천명 넘게 뽑으니까. 수학 과학 좀 된다고 생각하면 일단 달려드는 거지.” 생각해보면 나 때(80년대 말)도 과학고가 한군데 있긴 했다. 나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친구가 과학고를 준비했지만 자극이 되지 않았다. 그건 오로지 수학 과학에 특출한 애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명 합격자는 그들만의 리그지만 2천명 넘는 합격자 규모는 시장을 만든다. 2천명에 들기 위해 수만명이 달려드는 곳에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국가 발전의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 전문가를 키우는 것은 국가 교육의 구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처럼 입시 깔때기 국가에서 조기교육으로 확대되는 게 얼마만한 성과가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이공계 학계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에 오면 1, 2학년 때까지는 과학고 애들이 두각을 나타내지만 3, 4학년과 대학원으로 넘어가면 과학고 프리미엄이 사라진다고.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은 결국 적성과 열정이 최대한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이게 부족하면 학문의 영역에서는 결국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 일부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탈락 사태로 고교 서열화 논의가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자사고가 다른 특목고들 사이에서 고등학교의 서열을 촘촘히 채우고 있다면 그 맨 위에는 영재고 과학고가 있다. 지자체마다 지역 인재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영재고 과학고 모시기에 심혈을 기울여 전국에 28곳이나 되는 과학 영재들의 집합소가 생겼고 일반고 학생들의 여러배에 이르는 국가 세금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지만 그 투자가 실제로 얼마나 다시 국가 과학기술 발전으로 돌아오는지는 이제 중간 결산을 할 만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비단 과학고 영재고 출신들의 의대 입학만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 몇명, 카이스트 몇명 따위의 입시 결과를 자랑하는 게 영재고 과학고의 목표라면, 그리고 스스로가 아닌 부모의 열정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문제집과 씨름하면서 만들어진 과학 영재를 걸러낼 능력이 없다면 이 역시 없어지거나 최소화되는 게 맞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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