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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구원자와 범죄혐의자, 이재용 / 서복경

등록 2019-07-17 17:23수정 2019-07-22 19:10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최근 언론 지면을 통해 이재용씨를 볼 일이 잦다. 이재용씨의 공식 직함은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에 무역규제 조처를 내세운 뒤, 동분서주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해 일부 언론은 ‘리스크 차단에 총력’ ‘위기 대응 리더십 발휘’ ‘한-일 무역전쟁 위기에서 구원투수 등판’ 등으로 묘사한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은 “시중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이순신 장군에 비유하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주장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그의 대처에 대해 “개별 기업의 인식이 국가의 인식을 뛰어넘고, 대처 방안도 글로벌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명분 없는 무역규제가 한국 기업에 피해를 입힌다면 한국 사람 누구나 분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이 이 어려움을 잘 대처해나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 부회장인 그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기업에 닥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렇게 칭송받을 일일까? 아마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대응 리더십’이 실제 발휘되었는지, 정말 ‘대처 방안이 글로벌’해서 ‘구원투수’가 되었는지,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구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가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이재용씨가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하더라도, 부회장인 이재용씨는 기업의 책임 있는 경영진의 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나도 삼성전자가 이 사태를 잘 극복해나가기를 바라지만, 내가 의아한 것은 이재용씨에 대한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의 태도다.

그는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사건’에 대한 대법원 심리가 끝나 곧 판결을 앞두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이재용씨가 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뇌물을 공여했는지, 이 과정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준 승마용 말 세필을 뇌물로 볼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가리게 될 것이다.

또 그는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이루어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검찰수사를 앞두고 있다. 이 사건도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사건’과 마찬가지로 삼성전자의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연대는 이 회계사기 사건으로 이재용씨가 4조원이 넘는 부당이득을 보았다고 발표했다. 또 참여연대와 청원인 7천여명은 당시 삼성이 사주한 불법 회계자료를 토대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므로, 국민연금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물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언론은 그가 ‘법원과 검찰에 발목이 잡혔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 경제의 ‘구원자’가 되어야 할 그가 ‘범죄혐의자’로 재판받고 수사받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이다. 이건희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불법 비자금을 제공한 죄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다. 2008년 ‘삼성 특검’에서 불법 경영권 승계에 관한 여러 혐의로 수사를 받은 이건희 회장은 결국 세금포탈과 주식시장 불법행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2009년 대통령 단독 특별사면을 받았다. 1995년부터 삼성 총수 일가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 뇌물을 제공하고 시장을 교란해왔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2019년 이재용 부회장은 똑같은 혐의로 재판과 수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로 삼성 일가의 불법행위는 언제까지 면죄부를 받아야 할까?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와 이재용씨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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