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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이재용의 불공정’은 어찌할 건가 / 김회승

등록 2020-07-07 18:47수정 2020-07-07 19:06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지난 1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지난 1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김회승 ㅣ 논설위원

또 공정성이 문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는 ‘기회의 박탈은 아니지 않으냐’는 반론에도, ‘공정하지 않은 과정이 문제’라는 재반박이 더 거센 듯하다. “비정규직 차별이 더 문제”라고 나선 한 여당 정치인은 “자식 둘을 유학 보낸 사람”이라는 한마디로 발언권 자체가 묵살당했다. 최근에는 불공정의 화살이 부동산·주식으로 번졌다. 정부의 집값 대책엔 ‘서울의 새 아파트에 살고 싶은데, 수도권 외곽이나 가라는 거냐’고 아우성이다. 소액 투자에도 주식양도세를 물리겠다니 ‘당신들은 주식으로 돈 벌어 놓고 이제 와 세금을 걷느냐’고 항변한다. 기성세대와 기득권의 ‘사다리 걷어차기’요,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공정성은 줄곧 우리 사회의 주된 화두였다. 앞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조국 부부의 ‘부모 찬스’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공분을 불렀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돈도 실력이야”라는 국정농단 세력을 촛불로 심판한 시민의 힘으로 집권한 세력이 아닌가. 국정 철학인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끊임없이 민심의 심판대에 오르는 건 스스로 한 약속을 검증받는 당연한 과정이다.

과연 공정함의 기준은 무엇일까? 인간의 비합리적(비경제적) 행위를 연구하는 이들이 ‘불공정을 징벌하는 유인’을 들여다보는 유명한 실험모델이 있다. ‘최후통첩 게임’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1만원을 주고 친구와 나눠 갖되 당신의 제안을 거부하면 둘 다 한푼도 못 받는다 했다고 가정하자. 경제적 기준으론 단돈 100원이라도 받아야 이익이지만 인간은 그리 행동하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3000원 이하를 제안하면 친구는 거부한다. 불공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푼도 받지 못하는 손해를 감수하고 당신의 불공정을 징벌한다.

상황을 조금 바꾸면 결과는 많이 달라진다. 친구 사이가 아닌 교사와 학생에게 같은 조건을 줬다 치자. 학생은 교사가 1000원만 건네도 순순히 받는다. ‘우월적 지위’에 따라 공정성의 기준이 달라진 때문인데, 교사와 학생 둘 다 불공정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정성이란 균질하지 않으며, 어느 때엔 너무 과도하거나 혹은 과소하게 작동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지난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12년 만에 성명을 냈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도 수사도 하지 말라는 권고 결정을 내린 직후다. ‘이재용씨는 욕심을 비우고 양심을 찾으시오’라는 제목의 성명은 삼성과의 긴 싸움을 맨 처음 시작했던 사제단의 호소다. 사제단은 묻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슴들이 내 재산을 불려 대주주로 만들어줬다’는 이 거대한 불공정을 그대로 놔둘 것이냐고. 이재용뿐 아니다. 부자들의 재산권을 천부인권의 반열에 올려놓은 법률가들, 재벌의 개평을 받으며 아첨으로 기생하는 언론들, 기업은 사주의 재산이라는 경제인들을 향해 죽비를 들었다. 허나 어찌된 일인지 사회적 울림이 별로 없다. 삼성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사회에선 불공정에 대한 징벌 유인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최후통첩 게임의 교사와 학생처럼, 이 정도면 모두 공정하다고 느끼는 걸까.

과연 불공정의 기준은 공정한가? 작금의 공정성 이슈는 결과의 평등보단 과정의 공정을 더 중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공정한 경쟁이라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도 승복하지만, 경쟁에 뒤처진 이들을 우대하는 건 무임승차라고 본다. 노력한 만큼의 보상, 즉 ‘비례의 원리’는 사실 진일보한 가치다. 과거 권력과 혈연, 돈의 힘이 모든 걸 결정하던 시절 ‘능력주의’는 결과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이 났다. 그러나 비례의 원리는 이젠 ‘보편의 원리’(결과의 공정)와 종종 충돌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는 데 불공정의 기제가 작동하는 것처럼, 불평등을 바로잡으려는 국가나 사회의 노력을 부정하거나, 노오오오력으로 바꿀 수 없는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하게 된다.

공정성은 “한국인의 가슴에 인두로 지진 낙인 같은 가치이며, 온갖 좌절과 부당함, 그래도 남은 희망이 응축된 뜨거운 단추”(장덕진 교수)다. 그래서 때론 직관적이고 모순적일 수 있지만, 결과는 더 정의로워져야 한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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