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춘
논설위원
개인 용무로는 갈 일이 없는 서울 서초동을 지난 토요일 오후에 찾아갔다. 계절이 바뀌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조국 정국에 대해 희미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집회 참가자 수가 실마리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거대한 인파는 그날 집회의 가장 명백한 특징이었다. 지금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끼리 ‘페르미 기법’을 들먹이며 만 단위와 백만 단위 사이에서 날 선 숫자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그 규모가 저마다의 예상을 크게 넘어선 사실은 어느 쪽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 주최 7차 촛불집회가 9월28일 서울 서초동 반포대로에서 열렸다. 참가 시민들이 ‘정치검찰 물러나라' 등의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검찰개혁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집회 풍경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서 2016~2017년 박근혜 하야 집회로 이어져온 그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동원된 집회에서는 듣기 어려운 현장 구석구석의 ‘지방방송’도, 인파가 쉼 없이 밀고 써는 주변부의 계통 없는 동선도 그랬다. 찬찬히 살피면 눈에 띄게 달라진 것들이 있긴 했다. 단체란 단체의 깃발들은 모두 나와 아우성치던 박근혜 하야 집회 때와 비교하면 이날 깃발은 멸종 위기종에 가까웠다. 온갖 기발한 개인 깃발과 코스프레를 선보였던 젊은층도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앞으로 참가자 수가 계속 늘더라도 단체와 젊은층이 얼마나 가세할지는 의문스러웠다.
다소 장황하게 지난 주말 집회를 묘사하는 이유는 하나다. 나부터 신중해지고 싶고, 어떤 예단과도 거리를 두고 싶어서다. 그날 이후 진보진영 내부의 대립은 한층 첨예해지는 모양새다. 얼마 전 진중권 교수가 방송에 나와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 미쳐버린 게 아닌가”라며, 자신은 “완전히 윤리적 패닉 상태”라고 토로했다. 저 정도는 아니지만, 내 사회적 관계를 비추는 소셜네트워크 속 풍경을 보노라면 비슷한 생각이 스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감정적 면모를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행태로만 보면 ‘댓글 부대’를 향해 달리는 과속 하향 평준화다.
조국 정국은 우리 사회에 전례 없는 프레임을 강요하고 있다. 기존의 안과 밖, 위와 아래가 뒤집힌 정도를 넘어서 아예 안과 위, 밖과 아래가 종간 짝짓기를 하는 형국이다. 그 아수라장에서 거짓과 사실의 경계는 무너졌고, 진실은 상상계에서 끼리끼리 그리는 그림이 됐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자기 그림을 진실로 확정한다. 진보 한쪽의 “거봐라” 투의 냉소도, 반대쪽의 “현실은 회색지대를 용납하지 않는다, (일어서라)”라는 웅변도, 그 바탕이 계급론이든 윤리학이든 다른 어떤 심오한 정치철학이든, 자기 불안이 반영된 ‘진실 조급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국 촛불’이라고 다르겠는가. 그곳의 구호들도 만에 하나 다른 진실의 가능성을 닫아놓고 있었다. 대표 구호인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의 앞 절과 뒤 절은 고차방정식으로도 풀 수 없는 수학 문제처럼 보였다. 그래서 수사를 중단하라는 건지, 아니면 과잉 수사를 멈추라는 건지도 명시되지 않았다. “문재인을 지키자”나 “이제는 울지 말자”는 아픈 과거를 오늘로 소환하고 있었다. 케이크를 든 남성의 실루엣과 “나도 조국이다”는 ‘좋은 가부장’을 진실의 위상으로 승격시킨 듯했다.
하지만 몇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니, 한목소리를 내는 다른 정체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국 수호,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조금씩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단일한 목표인 뒤 절과 달리, 앞 절에 대해서는 그 자체가 목표인 이와 단지 수단인 이, 연민이나 동일시의 대상인 이, 이도 저도 아닌 이로 갈렸다. 그 차이에 대해서는 서로 입을 다물었으나, 제가끔의 말줄임표가 이어져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다. 더러는 확정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한 물음표도 가슴속에 묻어둔 듯했다.
‘검찰 개혁’이라는 현안 앞에서 조국 한 사람이 상수처럼 돼버린 오늘의 현실을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건의 전개는 언제나 주체들의 기획을 초과한다. 2011년 ‘희망버스’가 그랬고, 2014년 ‘안녕들 하십니까’가 그랬다. 따지고 보면 2016년 촛불 또한 처음 불을 밝힐 때의 누구도 그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사건의 끝이 어디일까를 지금 묻는 것은 언제나 성급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커다란 물음표를 전기 촛불들이 어룽대는 서초동에 남겨두고 다음 행선지인 대학로로 향했다. 노들장애인야학 후원의 밤 행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는 지청구가 들려왔다. 당장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할 곳이 거기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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