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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조직이라는 이름의 남성 공화국

등록 2019-10-27 17:12수정 2019-10-28 02:35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

검찰의 작태를 목도하는 나날이 심신에 고단함을 더한다. 특히 검찰청 국정감사 생중계를 보고 나서는 무기력해지기까지 했다. 평소에는 서릿발 같던 국회의원들이 현직 검찰총장 앞에서는 어찌나 나긋나긋하시던지….

검찰과 그 수장인 윤석열 총장을 보면 권위불화를 겪는 대표적 한국 남성들의 사례를 보는 것 같다. 그는 한때 엄격하고 공정한 사람으로 인식됐다. 한국 검찰의 청렴함과 불편부당함이 그의 손에서 한껏 성장할 것이라 믿어, 환호했다. 하지만 지켜보니 그가 공정성이라는 명분으로 휘두르는 권력은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조직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진 조직의 사람만을 향하고 있다. 즉 그는 (어떤 정당의 정권이건)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라 ‘자기 조직보다 더 강한 권력’이어서 칼을 대는 것이다. 자기 조직의 이득 계산에 따라 지목된 더 센 놈을 처리할 때, 자기 권위에 한껏 취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실현시킨 영웅심뿐 아니라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막강한 권력을 확인하며 자기 삶의 의미를 충족한다. 조직을 떠나면 한갓 필부일 뿐인 그들이 조직에 의존해 살아가자면 필연적으로 ‘대단히 사랑하는 조직’이 강할수록 자신도 강해진다고 믿게 된다. 그래서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은 그 속성상 필연적으로 더 강한 권위와 불화하게 돼 있다.(시절인연이 맞으면 이런 행위는 정의로워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잠깐 속았던 것일까.)

왜 이런 무리가 권력의 목줄을 쥐고 진짜 권력자 행세를 하며 호가호위하게 된 것일까? 이 남성적 폭력의 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문제의 답은 항상 현상에 있다는 라캉의 조언을 참조해 본다. 이것을 조직 폭력이라고 부르는 데 동의한다면, 조직과 폭력의 원조는 어디인가? 한국 사회에서는 단연 군대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물론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다수의 군인은 열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단의 정치군인들이 자행한 폭력 통치행위, 그들이 만들어 낸 사회구조, 특히 위계를 바탕으로 하는 남성 중심의 모든 서열화 폭력 문화. 이것은 단순히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만 경험한 것이 아니다. 70~80년대에 초등, 중등 교육을 받았던 한국의 모든 청소년이 일상적으로 겪어야 했던 전투적 군사교육과 일사불란한 집단주의를 말함이다. 매일 아침 학교 일과의 시작이었던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매달 한번씩 했던 민방위훈련, 교련복, 제식훈련, 학도호국단 등 헤아릴 수 없는 그 군사 문화와 무력행위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절실했던 더 강력한 무력과 힘. 여기에 남성 조직 권력의 정신이 붙박여 있다는 생각이다.

이쯤에서 한반도 남쪽의 민주공화국뿐 아니라, 북녘의 저 인민공화국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쪽 공화국에서는 “수령이 결심하면 인민은 한다”고 한다. 국가 전체가 조직이다. 조직을 열렬히 사랑하는 그들이 요즘 들어 더더욱 낯설지 않다.

지난 몇십년 동안 점점 정치군인들의 총칼의 무력에서 부패 검찰들의 육법전서 법력(法力)으로 권력의 도구가 바뀌고, 군대에서 검찰로 남성적 패거리 권력의 중심이 이동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시민들은 검찰을 해체하자는 것도 아니고, 검찰이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며, 그저 무소불위의 과잉 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려 애쓰는 것이다. 시민들이 자신이 가진 엄청난 권력을 휘두를 때는 언제나 그 목적이 명확하다. 부당하게 팽창한 권력을 거세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권력만 쓴다. 조직이라는 이름의 남성 공화국이 시민민주사회로 진화하는 데 우리는 몇번의 혁명이 필요한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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