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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10년 만에 다시 시험대 오른 ‘검찰-언론’

등록 2019-11-04 17:43수정 2019-12-08 11:15

김이택

언론의 폭로로 시작된 사건도 수사가 본격화하면 검찰이 ‘갑’의 위치에 선다. 언론의 비판·견제 기능이 무력화하는 순간이다. 여기에 검찰-언론 관계의 딜레마가 있다. 법무부 훈령으로 언론의 수사 보도 관행도 ‘논두렁 시계’ 파문 이후 10년 만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 후반기의 일이다. 대검이 돌연 한 지방검찰에 사건 기록을 올려보내라고 지시했다. 얘기가 안 된다고 보고 덮어뒀던 한 야당 의원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이었다. 이후 대검 중앙수사부가 직접 나서 이 의원을 기소했으나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로 끝났다. 당시는 여권 유력 인사들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나던 때, 중수부가 구색 맞추기로 야당 의원도 끼워넣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대검 중수부가 기소한 사건의 무죄율이 유달리 높았던 것은 이런 정치적 변수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검찰총장이 직접 지휘하는 중수부의 위세는 막강했으나 바로 그것이 ‘친검’ 박근혜 정부조차 폐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쿨’한 수사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오수 법무부 차관 이윤성 검찰국장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김오수 법무부 차관 이윤성 검찰국장을 면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총장이 책임지고 지휘한다는 ‘조국 수사’ 역시 출발선부터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총장이 대통령에게 ‘장관 임명 불가’를 건의한 순간, 사건은 검찰 수뇌부의 ‘예단’ 아래 ‘먼지털기’ 수사로 진행될 운명이었다.

특수부 검사들이 수사에 착수하는 경로는 보통 세 갈래다. 국정농단·사법농단 사건처럼 언론이 먼저 폭로하거나, 검찰 자체 정보로 인지하는 경우, 아니면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처럼 정권의 ‘하명’으로 시작된다.

어떤 계기로 시작됐더라도 특수수사의 성패에 빼놓을 수 없는 변수는 여론이다. 여기서 언론과 검찰의 접점이 만들어진다. 언론은 검찰을 비판·견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사실상 ‘공조’하는 관계로 엮인다.

국정농단·사법농단 사건은 검찰과 언론의 공조로 여론이 수사를 견인한 모범 사례다. 국기문란·헌정유린에 해당하는 권력자들의 범죄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앞세운 ‘피의사실 공표’ 행위도 나름의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언론의 폭로로 시작된 사건도 수사가 본격화하면 증거와 자료를 틀어쥔 검찰이 ‘갑’의 위치에 선다. 검찰로선 받아쓰기 잘 해주는 언론에 흘려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려 하기 마련이다. 언론의 비판·견제 기능이 무력화하는 순간이다. 여기에 검찰-언론 관계의 딜레마가 있다. ‘조국 수사’ 역시 국회·언론의 검증 국면에 검찰이 뛰어든 희귀 사례이나 전개 과정의 주도권은 검찰이 쥔 채 진행 중이다. 핵심 증인의 방송 인터뷰조차 검찰에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묵살된 게 이를 방증한다.

검찰 내부 비리나 조직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선 검-언 공조가 ‘부당거래’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 5공 시절 박종철 고문치사 범인 은폐·축소에 관여한 경찰 고위층은 모조리 구속됐으나 검찰 간부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는 박근혜 정권까지 이어져 ‘우병우 청와대’가 주도한 여러 사건의 왜곡·축소에도 불구하고 이에 가담한 법무부·검찰 간부들은 단죄되지 않았다. 서슬 퍼런 국정농단 수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검찰 식구’들은 웬만하면 빠져나갔다. 임은정 검사의 분투가 여전히 조직에서 외면받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언론 역시 대부분 감시·견제 대신 침묵으로 방조·동조했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세계 유일의 강력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이를 감당할 만한 신뢰는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국적 현상이다.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는 ‘수사공보 준칙’을 낳았고, 조국 수사는 ‘형사사건 공개 금지’ 훈령에 가속페달을 밟게 했다. 촛불시민들은 검찰개혁과 함께 언론개혁도 외쳤다. 견제와 공조 사이를 오가던 검찰수사 보도 관행도 ‘논두렁 시계’ 파문 이후 10년 만에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법무부의 훈령이 언론계의 반발에 부딪힌 건 오보 기자 출입 금지와 검사 면담 금지 조항 탓이 크다. 그렇다고 훈령 철회는 해법이 아니다. 수사 단계에선 피의사실 공개를 최소화해 피의자 인권을 보장하되 기소 이후엔 형법 126조(기소 전 공개 금지)와 공개재판 취지에 맞춰 공소사실을 대폭 공개하는 게 맞다. 어차피 국회를 통해 주요사건의 공소장은 대부분 공개되고 있다. 수사 단계의 은폐·왜곡이 문제지만 공수처가 생기고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 그런 우려도 줄어들 것이다. 다만 제도 정착까지 알권리와 피의자 인권 보호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다. 운영의 묘를 살리는 방안으로 훈령을 손볼 필요가 있다. 물론 출입금지 등 독소조항은 고쳐야 한다.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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