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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윤석열식 검찰 중립’ 유감

등록 2019-12-17 05:00수정 2019-12-17 14:51

청와대를 집중 겨냥한 ‘윤석열 검찰’의 칼날이 제1야당은 철저히 비켜가고 있다. 그는 “줄곧 1번만 찍었다”고 밝힐 정도로 보수 성향의 검사다. 그렇다고 ‘보수 야당’에 코드 맞추려는 건 아닐 것이다.

현 정부 성공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다는데, 그런 ‘충정’은 놓아두더라도 ‘중립’ 약속만은 지키기 바란다.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5개월여 만에 대한민국 이슈의 주도권은 검찰이 완전히 틀어쥐었다. ‘조국 수사’가 4개월째 진행 중인 가운데 ‘유재수’ 수사, ‘하명수사 의혹’ 수사가 한창이다. 세월호특별수사단 구성에 이어 ‘이춘재 수사’에 뛰어들더니 최근에는 ‘청와대 행정관 가방분실 사건’까지 끄집어내 수사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공소장에서 드러나는 범죄사실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다. 그를 봐줬다는 현 정권 실세들을 겨냥한 수사에도 상당한 명분을 제공해준다.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해야 하는 건 형사소송법에도 나오는 검사의 당연한 의무다.

최근의 검찰 수사에는 특징이 있다. 검찰 개혁 입법 처리를 코앞에 두고, 동시다발적으로, 이를 밀어붙이는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해서, 전례없이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다. 윤 총장은 취임사 이래 여러차례 ‘정치적 사건에서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의 칼날이 또 다른 의회권력인 제1야당은 철저히 비켜가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2014년 국가정보원 댓글공작 사건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겨레>에 폭로했다(2017년 12월23일치). 세월호 참사의 정부 책임이 드러날까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구속영장에서 빼도록 압력을 넣고, 선거를 의식해 세월호 수사를 지연시켰다는 검사들의 증언도 공개됐다. 유재수 사건의 ‘감찰 무마’가 직권남용이라면 이런 ‘수사 방해’는 더 죄질 나쁜 범죄다. ‘이규진 수첩’을 근거로 대법원장까지 구속한 검찰에 ‘김영한 업무일지’는 여전히 직권남용의 유력한 물증이 돼줄 것이다.

대법원은 ‘신승남 검찰총장 사건’에서 서둘러 내사 종결하라는 지시만으로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그런데 이를 모를 리 없는 검찰이 세월호특별수사단까지 꾸려놓고도 시효(7년)가 남아 있는 ‘수사 방해’ 범죄엔 손을 놓고 있다. 수사의뢰 않고 사표를 받은 건 ‘정무적 판단’에 따른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감찰 무마’라며 청와대에 두차례나 압수수색 영장을 들이민 검찰이라면 ‘수사 방해’는 최소한 조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중립’ 아닌가.

‘조국 수사’에서 딸의 자기소개서 등장인물들까지 불러 탈탈 털던 검찰이 그보다 심각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딸의 입시 비리와 채용 특혜 의혹 고발 사건은 걸음마 수사를 거듭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회의 방해로 소환장을 받은 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휴회기에,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대포폰 들고 잠적하는 소동까지 벌였다는데 검찰은 강제수사는커녕 해를 넘길 조짐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밝힌 ‘사회적 약자’ 배려 약속을 제1야당에 적용하는 것도 아닐 테고, 납득하기 힘든 ‘윤석열식 중립’이다.

이런 검찰 행보는 ‘검찰 개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국 수사’에 이은 ‘유재수 수사’나 ‘가방분실 행정관 수사’가 청와대를 겨눈다면 ‘하명수사 의혹’ 수사는 청와대와 경찰을 동시에 노린다. ‘이춘재 수사’도 검경의 수사권 조정 갈등을 감안했을 것이다. 검찰 힘 빼고 조직 줄이는 검찰 개혁 입법이 닥치자 일선 검사들이 “버팀목 돼주겠다”고 약속한 윤 총장을 앞세워 사실상 ‘반란’에 나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 황교안 대표를 내세운 한국당은 다른 법안과 함께 검찰 개혁 입법을 국회 안팎에서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검찰로선 같은 편에 선 ‘황교안’ ‘나경원’에게 굳이 칼날을 들이댈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권 교체 때마다 변신하며 여론의 환호를 받아 검찰권을 사수하는 데 성공해온’ 검찰의 ‘화려한 분장술’에 속지 말라고 한 임은정 검사의 글이 그 어느 때보다 와닿는 요즘이다.

윤 총장은 좌천돼 지방을 전전하고 있을 때 현 정권 실세로부터 20대 총선 출마를 권유받고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있다. 그때의 인연이 총장에 오르는 데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 시민의 뜻을 받들어 ‘박근혜·이명박’을 잡아넣은 ‘검찰주의자 윤석열’의 칼이 이제는 현 정권을 겨누고 있다. 그는 사석에서 “(2017년 대선 빼놓고는) 줄곧 1번만 찍었다”고 밝힐 정도로 보수 성향의 검사다. 그렇다고 ‘보수 야당’에 코드 맞추려는 건 아닐 것이다. 현 정부 성공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다는데, 그런 ‘충정’은 놓아두더라도 ‘중립’ 약속만은 지켰으면 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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