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개정안\' 투표가 예정된 27일 국회 본회의장의 문희상 국회의장석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이 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선거법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부르기는 좀 난감하다. 그래도 연동률 50% 적용으로 정치 개혁의 첫발을 뗐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선거법은 앞으로도 계속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개정된 선거법 내용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선거법 개정 절차다. 과거 선거법은 주로 독재자가 일방적으로 만들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그랬다. 예외는 1988년이다. ‘1노 3김’의 정치적 합의로 현행 소선거구제가 만들어졌다.
2018년 12월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했을 때, 선거법이 진짜 개정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히 정치 공학에 밝은 의원들이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양당제 기득권을 포기할 리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비토크라시’(Vetocracy)로 본색을 드러내자, 개혁 성과가 절박한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군소야당의 숙원인 선거법 개정과 묶어서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이해의 절묘한 절충이 이뤄진 것이다.
이후 ‘4+1’은 8개월 동안 지독한 인내와 양보로 마침내 선거법 개정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놀라운 일이다. ‘4+1’ 협상 과정은 정치적 타협의 수범 사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개혁은 점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의지도 한몫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힘이다.
자유한국당과 이른바 보수 신문들은 선거법 내용은 물론이고 선거법 개정 절차의 정당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제1야당을 배제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4+1’의 패스트트랙과 본회의 의결은 국회 선진화법을 철저히 준수한 적법 절차다.
2012년 여야 합의로 도입한 국회 선진화법은 대략 두개의 얼개로 짜였다.
첫째, 예산안과 법률안의 주도권을 여야로 각각 나눴다. 예산안은 정부 여당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 대신 법률안은 야당의 동의를 받도록 했다.
둘째,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를 제도화했다. 소수 정파의 횡포를 막기 위해 5분의 3 의석을 확보한 다수 세력에게 패스트트랙을 거쳐 입법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소수 정파에는 필리버스터로 ‘말할 기회’를 보장했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2012년부터 2018년까지는 첫번째 얼개만 작동했다. 여야 모두 너무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다. 동물국회 대신 식물국회가 됐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2019년에 들어서야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 짝으로 구성된 두번째 얼개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여야가 국회 선진화법의 효능을 뒤늦게 발견한 탓이리라.
국회에서 최근 벌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 정치의 앞날에 연합 정치라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잘 새겨야 한다.
앞으로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정당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1당과 2당은 120~130석 정도 의석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10~20석 정당이 3~4개 나타날 수 있다. 온건 다당제 구조가 일상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1당이나 2당 단독으로는 국회에서 예산안이나 법률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1당이나 2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다.
첫째, 상대를 현실로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물론 대연정을 할 수도 있다.
둘째, 군소정당들과 손잡고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는 법률안을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면 보수 성향의 군소정당들을 끌어들여 5분의 3 의석을 확보한 뒤 패스트트랙에 올리면 된다.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해임 건의는 더 쉽다. 연합 정치의 길이 활짝 열려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통령 1인 통치에 의존해 왔다. 이제는 대통령 한 사람 잘 뽑아서 팔자 고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세력과 공존해야 한다. 대화하고 절충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게 정치의 본령이다.
성한용 ㅣ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