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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삼성’과 ‘정준영 판사’에게 묻는다

등록 2020-01-19 19:38수정 2020-01-20 02:08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위원장 내정까지의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어 위원장 내정까지의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1월9일 발표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기사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노조·승계 문제까지 성역은 없다” “계열사 7곳 ‘외부자 눈’으로 감시” “위원회 구성·운영 독립성 보장받았다” 등 긍정적 반응 일색이었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드문 기구”라는 낯뜨거운 제목까지 등장했다. 이 기구가 내부 정보를 수집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판결을 앞두고 이 부회장의 실형을 면하기 위한 이벤트성 기구란 의혹이 있다는 등의 비판적 시각은 <한겨레> 등 극소수였다.

그런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에 ‘의혹’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잘못인 듯하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과 12월 열린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위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준법감시위 설치가 재판 결과와 무관하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양형에 고려하겠다는 뜻이 확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 판사는 17일 열린 파기환송심 4차 공판에서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 양형 심리와 관련해 삼성이 제시한 준법감시제도의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의 발언을 번복하고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됐으면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형량 줄이기 의도와 연관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은 이제 부질없는 일로 보인다. 오히려 그런 방식을 통한 형의 감경이 우리의 사법체계에서 적절한지, 삼성은 그런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는지 등을 깊이 검토해봐야 할 시점이다.

먼저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진정성이 있느냐의 문제부터 따져보자. 삼성이 총수의 불법행위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쇄신안을 내놓았으나 모두 용두사미가 됐다는 이야기는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 대신 다른 측면 하나를 살펴보자. 얼마 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과 저녁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오래전에 해놓은 약속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삼성 준법감시위 출범 기자회견을 한 날 저녁이었다. 자연스럽게 준법감시위가 식탁의 주된 화제로 올랐다. 김 전 대법관은 준법감시위 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의 고민과 망설임, 수락 과정, 위원 인선에 얽힌 뒷이야기, 앞으로의 각오와 계획 등을 매우 솔직하고 소상히 설명했다.

그런데 필자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나 제가 몸담은 한겨레신문은 삼성 준법감시위의 진정성을 결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감시견’ 기능입니다. 언론이야말로 기업의 준법감시 기능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한겨레가 삼성의 불법행위를 밝혀내 보도했더니 앙갚음으로 광고 탄압을 하고 있습니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 뒤 한겨레에 대한 광고를 2년 동안이나 모두 중단하더니 이번에는 삼성 뇌물 사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등을 보도했다고 광고를 4분의 1 수준으로 줄여놓았습니다. 불법·위법 사항을 지적한 ‘준법감시 언론’에는 광고로 보복하면서 따로 준법감시위를 만들어 법을 잘 지키겠다고 하니 그 말의 진정성을 어찌 믿겠습니까?” 이후 이어진 대화 내용이 궁금할 분도 있겠지만 생략한다. (사실 그날의 저녁식사는 극히 사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다만, 김 전 대법관은 삼성의 광고 보복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며 그런 사실에 놀라움과 충격을 표시했다는 것만 간략히 밝혀둔다.)

우리 형법 제51조는 ‘양형의 조건’을 밝히고 있다. 형사 사건에서 형량을 정하는 법률적 근거가 바로 형법 제51조다. 이 조항의 네 가지 양형 조건 안에는 ‘범행 후의 정황’이 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형을 줄이는 고려 사유가 되고, 그 반대 행위를 하면 형량을 높이는 사유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준법감시 언론’에 대한 삼성의 보복 행위를 형법상 ‘범행 후의 정황’에 대입해보면 어떤 해석이 나올까. 그 답은 자명하다고 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삼성 사건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정준영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에서 형벌보다는 재발 방지와 치료, 피고인과 피해자 간의 화해를 중시하는 이른바 ‘치료적 사법’, ‘형사소송상 화해중재’에 깊은 관심을 가진 판사로 유명하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그런 치료적 사법, 형사 화해를 시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13년 2월에는 한국법학원이 발행하는 잡지 <저스티스>에 ‘치유와 책임, 그리고 통합―우리가 회복적 사법을 만날 때까지’라는 논문도 발표했다. 이 논문을 찾아서 읽어봤다. 정 판사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의 핵심을 “피해자와 가해자가 참여하는 범죄에 관한 대화(dialogue)를 통해 가해자의 반성·사과, 피해자의 용서, 상호 간 화해를 끌어내고 범죄에 의해 훼손된 관계나 질서를 회복하는 데 있다”고 설명하면서 회복적 사법의 의미와 프로그램의 사례, 적용 모델 등을 상세히 짚고 있다. 정 판사는 결론 부분에서 “형사사법제도가 공정하게 운영되어야 회복적 사법도 그 기능을 다할 수 있다”는 등의 과제를 제시하면서 “회복적 사법의 기법과 가치는 범죄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갈등 해결 과정에 적용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 문화를 더욱 성숙하게 할 수 있다”고 썼다.

정 판사가 삼성 재판 과정에서 준법감시제도 문제를 꺼낸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대법관을 지낸 한 법률전문가는 “회복적 사법의 출발점은 재범 방지에 있다. 범죄자에게 응보형 형벌을 내리면 결국 형기가 끝나도 치유가 되지 않고 다시 법원의 회전문을 열고 들어오는 ‘회전문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정 판사가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한 것도 그런 회전문 현상을 막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서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삼성이야말로 ‘회전문 현상’의 대명사다. 총수가 연루된 불법행위 발생-쇄신책 발표-또다시 총수의 불법행위-쇄신책 발표…. 이렇게 회전문이 돌아간 것이 2000년대 들어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동안 삼성에 부과된 형량도 ‘응보형 형벌’과는 거리가 먼 솜방망이 처벌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에 회복적 사법 개념을 원용해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 회전문 현상이 멈출 것이라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일까.

정 판사의 논문을 읽으면서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치유, 통합, 화해, 대화, 가해자의 반성, 피해자의 용서 등 회복적 사법의 핵심 개념들이 이재용 부회장 사건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였다.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라는 말부터 그렇다. 기업범죄에서 가해자·피해자를 확연히 가르기는 사실 복잡하지만, 어쨌든 삼성은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뇌물사건의 피해자였다고 주장해왔다. “권력으로부터 겁박을 당한 피해자”라고 스스로를 여기는데 무슨 반성과 사과가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삼성은 자신의 위법 행위를 고발한 언론을 증오한다.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을 법정에 세운 ‘촛불’까지도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삼성은 반성과 사과는커녕 용서를 해야 할 쪽도, 상처를 치유받아야 할 쪽도 오히려 자신이라고 여겨왔다. 회복적 사법에서 말하는 ‘범죄로 훼손된 관계와 질서의 회복’도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의 형량을 대폭 줄여주면 재벌과 권력 간에 오간 뇌물청탁과 권력남용으로 훼손된 국가질서가 회복되는가.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일반 국민이 받은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회복적 사법의 목표인 화해와 치유, 통합은 애초부터 그른 듯하다.

예전에 무협지를 읽은 사람들은 “관(棺)을 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곧잘 등장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요즘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다. 삼성은 2018년 2월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용 부회장을 ‘사실상 피해자’로 보고 집행유예를 선고했을 때 “재판부의 용기와 현명함에 경의를 표한다”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그랬다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이 나오자 허둥지둥하고 있다. 관을 보고서야 눈물을 흘리는 셈이다. 그런데 그 눈물도 진짜 눈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은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조가 모델이다. 실제로 정 부장판사는 공판 과정에서 이 부회장에게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하면서 미국 연방 양형기준을 참고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대목이 있다. 우선, 미국의 형 감경 제도는 징벌적 손해배상(penalty damage) 제도와 맞물려 있는 제도라는 점이다. 1991년에 제정된 연방 양형 지침 매뉴얼(Federal Sentencing Guidelines Manual)은 기업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종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액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양형을 결정할 때 기업 쪽이 구축·운영하는 법 준수 및 윤리 프로그램을 벌금액의 감경 사유로 고려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즉 연방 양형기준은 채찍과 당근의 양 날개를 가진 규정이다. 2011년 우리나라 상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준법지원인(Compliance Officer) 제도를 다각도로 분석한 김재윤 전남대 교수의 논문 ‘준법지원인 제도의 도입에 따른 형사법적 인센티브’를 읽다 보니 이런 날카로운 지적이 눈에 띈다. “기업범죄에 대한 징벌적 고액 배상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양형기준에 형 감경 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기업범죄의 억제를 위해 채찍은 외면하고 당근만을 취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이유로 감경해주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지적이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우리나라는 아직 준법감시제도 프로그램과 관련한 세밀한 ‘양형 지침 매뉴얼’이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 법원은 기업의 범죄행위로 인한 벌금 부과 시 위반 등급에 따라 기준 벌금액을 산정하는데, 이때 연방 양형 지침 매뉴얼에 따라 ‘유책성 지수’(culpability score)를 고려한다. 기업이 효과적인 법 준수 및 윤리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면 유책성 지수에서 3점을 차감하도록 하는 등의 방식이다. 우리 법원은 그런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 세밀한 양형기준이 없이 법관의 자의적 판단이나 선입관이 좌우하는 감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과 한국의 사법문화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법 준수 프로그램을 감경 사유로 인정하는 미국의 양형 규정은 플리바겐 제도 등이 광범위하게 정착된 사법문화와 깊이 연관돼 있다. 한국의 사법문화는 미국과는 많이 다르다. 김재윤 교수는 앞서 언급한 논문에서 “미국과 달리 법원이 준법지원인과 법 준수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했다고 하여 기업범죄를 저지른 (최고) 경영진에 대해 형벌을 감경하는 온정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기업범죄의 억지와 예방이라는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는데 매우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준법감시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기업 체질을 혁신한 가장 모범적 사례로 꼽히는 기업은 독일의 지멘스다. 지멘스는 2006년 대규모 뇌물·부패 혐의가 드러나 큰 위기에 부닥쳤으나 뼈를 깎는 준법 노력으로 신뢰할만한 기업으로 거듭났다. 삼성 준법감시위가 모델로 깊이 연구하고 있는 것도 지멘스 사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멘스와 삼성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너무나 차이가 난다. 지멘스는 부정부패 사건이 드러난 뒤 당시 경영진의 책임을 물어 모두 물러나게 하고 회사 설립 이후 160년 만에 처음으로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했다. 사업 행동강령에 “양심과 준법 문화는 위로부터 시작된다”는 선언도 명시했다. 또 부정부패 예방·척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비영리 단체들에 1억달러 규모의 지원사업도 펼쳤다. 그런데 삼성은 거꾸로다. 총수의 ‘책임’이 아니라 ‘구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은 사실 ‘아랫사람들’이 문제라기보다는 “비양심과 탈법 문화가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삼성은 또 부정부패 예방·척결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은커녕 오히려 시민사회단체·언론 등의 반부패 활동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뇌물사건이 불거진 뒤 실제로 사회공헌기금 집행 규모도 대폭 줄였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이 모두 끝난 뒤에도 ‘초심’에 변함이 없을까.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조직이 출범했으니 앞으로 제대로 된 준법감시 활동을 펼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지형 전 대법관도 일단 위원장을 맡았으니 열정과 소신을 맘껏 펼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장 눈앞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감경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정준영 부장판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쓴 논문을 읽으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회복적 사법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됐다. 회복적 사법이 형사처벌의 보완이나 대안 차원을 넘어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다루거나 심각한 정치적 폭력으로 인한 후유증의 국민적 치유를 촉진하기 위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번 삼성 판결에 훨씬 신중해야 한다. 가해자의 변화, 사과, 용서, 화해 등의 핵심 단어가 실종된 상태의 감경이 어찌 회복적 사법인가. 어설픈 삼성 봐주기가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회복적 사법의 발전에도 해가 될 수 있음을 정 판사는 깊이 숙고했으면 한다.

김종구 ㅣ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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