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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이게 정말 독재인가 / 백기철

등록 2020-01-21 17:27수정 2020-01-22 09:46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1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해 11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독재’라는 표현이 눈에 띌 때마다 조금 불편했다. ‘독재라니, 여태껏 그것 하지 말자는 거였는데….’ 자조 섞인 한숨이 나왔다. 정부를 비판하는 은유적 표현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독재, 전체주의, 사회주의, 동물농장 등 험한 말들이 보수 언론에 넘쳐난다.

정말 독재인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전통에 서 있는 현 집권세력이 독재라면 그 뿌리가 뽑히는 꼴이다. 합법적 독재, 히틀러식 전체주의, 베네수엘라식 좌파 독재라는데 정말 그런가? 국민이 정말 개돼지 취급을 받고 있나?

얼마 전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은 성명에서 현 정권이 ‘유사 전체주의’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공직자범죄수사처, 연동형 선거법, 검찰 수사 무력화, 사법부 장악 등은 이를 위한 ‘거짓과 술책’이라는 것이다.

정권의 주요 행위를 독재로 몰아가는 ‘독재 프레임’이다. 국정의 잘못을 꾸짖는 것과, 독재로 공격하는 건 전혀 다르다. 허황된 음모론에 가깝다.

언론 자유가 이렇게 보장된 나라가 독재일 순 없다. 공중파를 장악해 독재를 한다는데, 공중파의 변화는 오랜 내재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권력에 따라 공중파의 풍향이 왔다갔다하는 방송 구조가 문제라면 문제다.

법원 요직을 입에 맞는 사람들로 갈아치운다는데, 정권 잡고서 뜻이 다른 이들로만 인사 할 순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사법부 장악 흑역사는 모두가 아는 일이다. 트럼프는 연방법원 판사 수백명을 보수 성향으로 갈아치웠다. 물론 인사는 균형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제 아래에선 대통령이 사법권력 배분에서 일정 부분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공수처와 연동형 비례제는 민주당 정권의 숙원이었다. 독재 하자는 게 아니라 검찰개혁·정치개혁 하자고 오래전부터 공약했던 것이다. 제도 차원의 문제제기면 몰라도 독재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하는 건 과하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자꾸 비교하는데 빈민 지지에 기반한 반미 포퓰리즘 정권과 현 정권을 동일 선상에 놓는 건 스스로를 비하하는 꼴이다. ‘30-50 클럽’에 든 나라, 한-미 동맹으로 안보·경제 동맹의 안전판을 갖춘 나라, 민주주의 전통이 확고한 나라를 베네수엘라와 비교할 일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에겐 우파 독재가 있었을 뿐이다. 해방 이후 수십년 동안 독재를 휘두른 건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극우였다. 수구 보수의 뿌리는 여전히 강고하다. 진보 집권은 이제 갓 13년에 불과하다. 이렇게 가면 독재라고 호들갑떠는 건 좌파 집권이 계속될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전체주의 문제는 좀더 살펴봐야 한다. 법원·검찰·의회 등이 빅브러더에 의해 통제되는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는 논리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얕잡아보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정의이고 우리만이 선한 세력’이라는 ‘독선’은 경계해야 한다. 의견이 다르다고 마구 공격하고 배제해선 곤란하다. 언론과 지식인이 댓글 비판이 두려워 자기검열하고 움츠러든다면 문제다. 진중권 유의 독설은 그런 폐해에 대한 과도한 반작용이다.

조국으로 대표되는 ‘내로남불’은 아픈 대목이다. 먼지털기식 검찰 수사의 문제점이 심각하지만, 조국 역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진보의 ‘독선’과 ‘내로남불’을 비판할 순 있지만 전체주의로 연결할 일은 아니다.

진영논리를 극복하자면서 버젓이 이를 반복하는 사례도 많다. ‘팩트로 승부하자’고 해놓고 한쪽 진영의 문제점만 잔뜩 늘어놓는 건 교묘한 진영논리다. 어렵지만 내 편, 네 편의 잘못을 두루 살펴야 한다.

‘문재인은 독재고, 윤석열은 정의’라는 식, 또는 그 반대는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조국도, 윤석열도, 문재인도 완전하지 않다. 조국이 ‘촛불’에 헌신했지만 행적은 미흡했다. 윤석열은 산 권력에 대들어 성과를 냈다지만, 조국 수사하듯 표적수사·별건수사로 일관했던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 윤석열·조국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 미스’ 역시 아프다.

대체로 한쪽이 다 옳고, 다른 쪽은 다 틀린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언제나 회색지대에 머물 순 없다.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하되, 항상 뒤를 돌아보며 자성하고 평가해야 한다.

지금 정권이 명실상부한 ‘촛불 정부’라고 할 순 없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독재나 전체주의는 아니다.

백기철 ㅣ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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