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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공감세상] 지금 필요한 질문 / 이라영

등록 2020-02-12 18:22수정 2020-02-13 09:17

이라영 ㅣ 예술사회학 연구자

1월 말에 독자들과 만나 밥을 먹는 이벤트가 있었다. 날짜가 조금만 늦었어도 행사를 취소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뻔했다. 2월부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곳곳에서 강연과 행사가 취소 혹은 연기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몇가지 일정에 변동이 생겨 금전적 손실도 입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다. “요즘은 여행가방 들고 다니는 사람만 봐도 괜히 신경 쓰인다”는 말을 들었다. 괜히 나까지 움찔한다. 김포공항역과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는 일이 잦은 나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뒤섞여 살기 때문이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데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에서 많은 사람이 감염되어 사망하고 있으니 충분히 공포스러울 만하다. 개개인의 과잉공포를 너무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때다 싶어 정치적 혼란을 만들어내는 정치인이다. 이들은 공포를 부추겨 정치적 야심을 챙기려 한다. 일부 보수언론도 이에 합세한다. 질병에 대한 사회 구조적 원인을 찾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오히려 교란시키려 애쓴다. ‘우한’이라는 지역명과 ‘중국인’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도록 만든다.

‘우한 폐렴’이라 이름 붙이고, 중국인을 막으면 ‘우리’는 안전한가. 내 면전에서 ‘유럽 내 중국인 혐오’에 대해 말하며 “한국인은 괜찮다”고 하던 우스운 배려를 보여준 한 ‘유럽인’이 생각났다. 중국인 혐오에서 한국인이 깔끔하게 분리되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토록 잘 분리한다면 왜 길거리에서 희롱할 때 ‘니하오~’라 말했을까. 곧 중국인에 대한 배척은 모든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로 나아간다. 실제 아시아 바깥에서는 이미 그러한 현상이 진행 중이다. 저열한 표현(프랑스 한 매체는 “황색 주의!”(alerte jaune)라고 썼다)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심을 부추기거나 물리적 구타를 행하고,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눈치를 주는 행동이 벌어진다.

인종주의는 다양하게 분화한다. ‘새까만’ 혹은 ‘누런’이라는 색깔로 지칭되는 원색적인 인종주의부터 경제 수준을 기반으로 한 지디피(GDP) 인종주의, 이제는 ‘코로나 인종주의’까지 등장했다. 이때 바이러스는 인종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에 해당한다. 한 인격체는 거대한 바이러스가 된다.

게다가 한국인이 나라 밖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을까봐 걱정하는 마음과 국내에서 중국인을 입국 금지하자는 목소리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나라 밖에서는 인종주의의 피해자처럼 구는 동시에 나라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인종주의를 생산한다. 이 모순을 돌아보지 않는 한 이와 같은 현상은 반복될 것이다.

질병은 취약한 계층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국내의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들은 더욱 눈치 보는 형국이다. 또한 일회성 강연인 특강을 하는 많은 강사는 강연 취소로 갑자기 수입이 줄거나, 식당이나 카페도 매상이 줄고, 영화관이나 공연장, 대형 쇼핑몰은 대표적인 기피 장소가 되었다. 확진자가 나오지도 않은 지역에서조차 버스 승객이 줄었다.

몇년 전 “질병관리본부입니다”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탄 비행기에 결핵 환자가 있다는 정보였다. 미국에서 잠시 한국에 다녀가느라 탄 비행기 안에서 발생했고, 한국 내에 연락처가 없던 나를 질병관리본부는 열심히 추적했다. 한국 내 가족에게 연락이 오고 뒤늦게 내게 메일도 왔다. 이미 미국으로 돌아온 뒤였지만 나는 결핵 검사를 받아 괜한 걱정을 떨쳤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기에 감염자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회복자 또한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은 전염병에 우리는 또 노출될 수 있다. 생태를 망가뜨리는 개발 등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꾸준히 파괴되었다. 한편 과도한 축산업 속에서 가축들의 질병도 잦아졌다. 그때마다 가축은 살처분으로, 사람은 격리로 감염에 맞설 수는 없다. 그러니 공포에 기반을 둔 신속한 혐오보다는 오늘날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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