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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안개 속 괴물 / 박진

등록 2020-02-24 18:32수정 2020-02-25 09:42

박진 ㅣ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어린 아들과 함께 동네 마트에 온 그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 노인이 피를 흘리며 뛰어 들어와 “안개 속에 무언가 있다”고 소리 질렀고, 실제로 사람을 해치는 괴생명체가 존재했다. 마트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영화 <미스트>에서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사람들, 어떠한 정보도 믿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 종말의 징조라며 타인을 제물 삼으려는 사람들로 나뉜다. 주인공은 상황을 지켜보다,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안개 속 괴물보다 마트 안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판단했다.

우리는 한달 가까이 코로나19와 살고 있다. 특정 종교는 바이러스 전파가 용이한 예배 방식 탓에 하루 사이 100명 이상의 확진자를 양산해,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확산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2차 예방으로 방역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질병이 둑 무너지듯 방방곡곡으로 퍼지는 모습을 보면 위험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들을 몰살시켰다. 몇해 간격으로 사스,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낙타, 박쥐와 천산갑이 숙주라지만, 이들에게서 바이러스를 가져온 것은 결국 인간이다. 앞으로도 볼 일 없을 천산갑보다 어제 대구 다녀온 친구나 한달 전 중국에 방문했던 동료가 더 무섭다.

14세기 유럽 인구 30~60%를 사라지게 한 흑사병이 생각났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비단길을 따라 크림반도에 실려 온 ‘검은쥐’들에게 기생하던 ‘동양쥐벼룩’을 숙주로 한 페스트균이 원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치명적 질병은 낯선 것들과 접촉해 국경을 넘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인간의 욕심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욕심의 피해에 먼저 스러지는 것은 약자들이었다. 김승섭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는 흑사병이 창궐한 당시도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망 위험이 더 높았다’는 연구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2015년 신장병을 앓던 동료가 숨졌다. 장례에는 그의 신장병 환우들이 참석할 수 없었다. ‘메르스’ 때문이었다. 그런데 위기 상황에 대한 공포를 더욱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은 정작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함께 살아남기 위한 합리적 선택을 논의하는 정치가 없고, 약자나 눈에 보이는 제물을 선택해 사냥을 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될 때, 약자들은 공포를 인식하기도 전에 위험에 잠식된다.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을 수 없어 질병 앞에 속수무책 노출되는 장애인과 노숙인, 이주민이나 노인, 환자와 산모 및 영유아들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 청도대남병원 폐쇄 병동 쪽 확진자는 110명 이상이고 사망자는 5명이다. 유폐된 정신병동과 이 죽음들은 무관할 수 없다.

감염된 이들과 특정 지역, 종교인들이 혐오당하고 이를 토대로 배제와 금지가 우선 해결책으로 제시되어서는 안 된다. 표적 삼아 배제하고 금지시키는 정책을 펼치게 된다면, 타국에서 벌어지는 한국인 차별에 대해 반박할 수 없다. 정부와 정치는 ‘배제와 금지’를 방역 대상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대처해야 한다. 금지와 제한이 필요할 때는 불가피한 조치인지, 최선의 조치인지 따져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건강보다 자신들 통합이 목적인 양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데 급급한 야당은 위험하다. 리스크 장사에 골몰한 정치꾼들을 몰아내야 한다. 지금 필요한 정치는 위험을 최소화하면서도 인권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다. “흑사병 당시 프랑스 툴롱에서 유대인 40명이 살해당한 후 스트라스부르 대학살이 벌어졌다. 희생양이 필요했던 사회는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사회적으로 인기 없는 소수파를 가려냈고, 그것이 유대인이었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도시에서 추방되고 남은 재산은 기독교인들이 탈취했다.” 김승섭의 같은 책은 이렇게 쓰고 있다.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위험에 관해 묻는다. 안개 속 괴물만이 아닌 건 분명하다. 특정 집단을 표적 삼아 공동체에서 그들을 내모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려 한다면 결국 우리는 ‘미스트’에서 탈출하려는 주인공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누가 가장 위험하고 무엇이 가장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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