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군 공수부대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소탕작전에 참여해 병사들 심리상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레스트레포>를 제작한 종군기자 서배스천 융거는 뜻밖의 상황을 만났다. 병사들은 사지에서 귀국만을 기다렸지만 정작 퇴역 뒤엔 집단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실제 전투 참여자는 10%였지만 파병 군인의 절반 가까이가 영구적 노동능력 상실을 호소한 게 특이했다. 융거는 2015년 “퇴역 군인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긴 것은 참혹한 전장이 아니라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였다”며 “위태로운 상황에서 경험한 공동체와 동료애를 잊지 못한 때문”이라고 <배니티 페어>에 기고했다.
2차 세계대전 때 런던이 공습당했을 때도, 드레스덴이 융단폭격으로 폐허가 됐을 때도 예상된 집단 패닉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도시 시민들은 전에 없던 결연함과 투쟁의지로 일어섰다. 미군 장교로 폭격의 심리적 영향을 연구한 사회학자 찰스 프리츠는 사람들이 전쟁이나 재해를 직면했을 때의 대응 방식을 탐구했다. 사람들은 재난 앞에서 혼란과 공포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똘똘 뭉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프리츠는 1961년 논문에서 “어째서 대형 재난이 건전한 정신상태를 가져오는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재난 시기에 일종의 ‘재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데, 사람들은 용기와 위로 속에서 만족스러운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코로나19가 일찍이 없던 공포와 불안을 드리웠지만, 헌신적인 공무원과 의료인들 및 현장 인력, 감동적인 민간의 봉사와 따뜻한 포용의 손길 또한 보고 있다. 마스크 한 시민들이 생필품 사재기 없이 질병관리본부 발표와 지침을 따르며 일상을 지키고 있다.
‘국난 극복’이 특기라는 말처럼 숱한 재난은 한국 사회 고유한 정서와 저력의 배경이다. ‘재난 공동체’는 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베카 솔닛은 재난 시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뉜다며 “이타주의와 상호부조를 향해 나아가는 다수와 냉담함과 이기심으로 2차적 재난을 부르는 소수”가 있다고 말한다.(<이 폐허를 응시하라>) 재난 시기에 이익을 위해 진실을 거짓으로 덮고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지만 공론장에서 그 소리를 증폭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구본권 미래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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