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우 ㅣ 전국1팀 기자
“대구스타디움을 비우고 거기에 천막을 쳐서 경증 확진자는 수용하면 되잖아요. 지금 병상 숫자가 확진자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병상 나기만을 기다리며 확진자들을 저렇게 집에 둘 것인지….”
지난달 24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던 지인이 답답해하며 한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구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백명씩 늘어난다. 처음에는 음압병상에 확진자를 입원시켰던 대구시는 이후 일반 병상을 비워 확진자를 넣었다. “꼭 병원에 입원시켜야만 할까.” “증상이 없거나 경증인 확진자는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 수용할 수는 없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치인도 아닌 그가 했던 말은 1주가 흘러 현실이 됐다. 지난 1일 정부와 대구시는 대구 동구 혁신도시 안에 있는 중앙교육연수원에 경증 확진자들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확진자의 중증도를 분류해 중증 환자는 병원에서 치료하고 경증 환자는 중앙교육연수원 등에 넣겠다는 것이었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집에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던 확진자 100여명은 다음날 중앙교육연수원에 옮겨졌다. 지난달 18일 대구에서 첫 확진자 발생 이후 13일째에 이뤄진 조치였다.
그 누구도 코로나19를 잘 알지 못했다. 걸리면 무조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위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사람은 더 공포를 느낀다. 정부와 대구시는 우왕좌왕했다. 병실이 확진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병상 확보에만 집착했다. 확진자들은 보건소에 전화해 “내 가족에게 전염되니 빨리 입원시켜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확진을 받고도 자택에서 입원을 기다리는 사람이 1천명을 훌쩍 넘었다. 중앙교육연수원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평범한 사람도 했던 생각을 정치인들은 왜 이렇게 늦게 하는 것일까.
2일 오전 9시10분 대구 수성구 범어2동우체국 앞에 200여명이 마스크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권영진 대구시장은 매일 오전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고 촉구하기 바쁘다. 정례 브리핑은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구시민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자리다. 중앙정부에 견줘 얼마 되지 않는 권한과 예산을 갖고 있는 ‘힘없는’ 시장이라도 대구시민들에게는 ‘힘 있는’ 시장인 척해야 한다. 왜 그런지 정부도 ‘힘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대구에 내려와 이후 대구에 계속 머물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는 존재감이 별로 없다. 정부가 약속한 마스크는 아직도 대구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여기에다가 각 정당 정치인들의 말실수와 기이한 행동은 대구시민들을 더 불안하게 하고 피곤하게 한다. “대구와 경북 청도 지역은 통상의 차단조치를 넘어서는 최대한의 봉쇄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이해찬 당대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고위당정협의회 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한 말이다. 대구는 발칵 뒤집어졌다. 홍 수석대변인은 뒤늦게 “방역망을 촘촘히 하는 것이고 출입 자체를 봉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수습했지만, 결국 26일 수석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대구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은 이 와중에 코로나19를 선거에 이용해먹느라 바쁘다. 김승동 미래통합당 대구 동구갑 예비후보는 지난달 20~21일 “문재인 폐렴 대구시민 다 죽인다”라고 1인시위를 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 그는 뭐가 신났는지 지난달 28일에는 “중국 대통령 문재인은 하야하라”며 1인시위를 벌인다. 통합당 정치인들은 뭐가 그리 철천지원수가 졌는지 자고 일어나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성명을 낸다.
지금의 여론상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뭇매는 정부, 지자체, 신천지가 나눠 맞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럴까. 주변 여기저기서 정치인이 주판알 튕기는 소리만 들린다. 그리고 대구의 확진자는 이제 4천명에 가까워진다.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