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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영화 ‘컨테이젼’과 코로나19 / 서정민

등록 2020-03-08 18:21수정 2020-03-09 13:44

서정민 ㅣ 문화팀 데스크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대신 집에서 영화 보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온라인상영관 박스오피스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달 셋째 주 온라인 이용 건수는 77만3031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이용 건수 38만1856건의 2배가 넘는다. 온라인에선 보통 최신작이 인기다. 지난 5일 기준 일간 박스오피스를 보면 1위 <히트맨>, 2위 <클로젯>, 3위 <남산의 부장들>이 모두 최신작이다. 그런데 4위가 9년 전 영화 <컨테이젼>이다. 국내 개봉 당시 22만여 관객에 그친 이 영화가 뒤늦게 인기몰이를 하는 건 지금의 코로나19 사태와 놀랍도록 닮아서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할 테니 줄거리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영화 먼저 보고 이 글을 읽기 바란다.

영화는 콜록거리는 소리로 시작한다. 기침의 주인공은 막 홍콩 출장에서 돌아온 글로벌 기업 임원 베스(귀네스 팰트로)다. 같은 시간 홍콩과 영국 런던에서 기침, 고열 등에 시달리는 환자가 발생하더니 이내 숨진다. 베스도 얼마 못 가 숨을 거둔다. 아내에 이어 6살배기 아들마저 떠나보낸 미치(맷 데이먼)는 다행히도 항체가 있는지 무사하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번져나가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치버 박사(로런스 피시번)와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즐릿)는 병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오랑트 박사(마리옹 코티야르)는 홍콩에서 최초 발병 경로를 추적한다.

이 상황만 봐도 지금 현실과 많이 겹치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 그렇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앨런(주드 로)은 사태를 취재하면서 개나리꽃액이 치료제라는 미확인 정보를 퍼뜨린다. 헤지펀드 매니저는 앨런에게서 미리 정보를 캐내 이익을 얻으려 하고 제약사 주가는 폭등한다. 사태 해결보다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데 열을 올리는 일부 언론과 가짜뉴스 유포자, 마스크 사재기로 한몫 챙기려는 무리를 떠올리게 한다. 약국에서 개나리꽃액을 사려고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은 마스크를 사려는 우리 모습과 판박이다.

영화 &lt;컨테이젼&gt;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컨테이젼> 스틸컷.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현실과 다른 대목도 있다. 영화에선 개나리꽃액이 떨어지자 대기자들이 약국 문을 부수며 폭동을 일으킨다. 식량 배급을 받다가 물량이 떨어지자 남의 것을 빼앗으려 들고, 거리 곳곳에선 약탈, 방화 등이 벌어진다. 이와 달리 우리는 차분하게 질서를 지키며 마스크 5부제, 마스크 양보 운동 등으로 상생의 길을 찾고 있다. 영화에선 간호사 노조 파업으로 병상이 더욱 부족해지는데, 우리의 경우 의료진이 부족한 대구로 오히려 다른 지역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자진해서 들어가고 있다.

보통의 재난 영화와 달리 <컨테이젼>에는 특출난 영웅이 없다. 이름값으로만 보자면 맷 데이먼, 로런스 피시번, 마리옹 코티야르 등이 중요한 구실을 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대신 현장을 누비다 자신도 전염돼 목숨을 잃는 역학조사관, 발 빠르게 바이러스를 배양하고는 제약사의 거액 제안을 뿌리치고 정부에 기증한 민간 연구자,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임상실험을 해 백신을 개발하는 정부기관 연구자 등이 저마다 힘을 보태 사태를 해결해나간다. 우리도 수많은 무명인의 희생과 연대로 이 위기를 이겨내리라 믿는다.

영화는 최초 감염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보여주면서 끝난다. 글로벌 기업이 공장을 짓느라 숲을 파괴하자 거기서 밀려난 박쥐들이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날아들고, 결국 박쥐에 서식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된다. 데이비드 콰먼의 책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를 번역한 의사 출신의 강병철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72%는 야생동물에게서 유래한다. 지금처럼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면 전염병은 또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염병뿐이겠는가. 생태계 파괴에 따른 기후변화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영화와 코로나19 사태가 울리는 경종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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