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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촛불정신과 민주당의 자기부정 / 김누리

등록 2020-03-15 18:05수정 2020-03-16 09:26

김누리 ㅣ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딱 한달 뒤면 총선이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르는 선거는 어차피 정권심판 선거일 수밖에 없다. 집권세력인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정권이고, 촛불혁명의 계승자를 자임하는 정부다.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에 대한 평가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얼마나 구현했는가에 따라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촛불정신이란 무엇인가. 국민은 그 추운 겨울, 무엇을 위해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을 촛불로 물들였던가. “이게 나라냐.” 이것이 광장의 외침이었다.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라는 것이 촛불의 지상명령이었다. 촛불정신은 곧 이 나라를 비정상적인 기형 국가로 만든 ‘친일-독재 기득권세력’, 즉 수구세력을 청산하라는 역사의 명령이요, 새로운 사회를 위한 근본적 개혁을 감행하라는 시대의 요구였다. 요컨대 수구 종식과 사회 개혁이 촛불정신의 중핵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지난 3년 촛불정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성과를 이루었는가. 두가지 점에서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첫째, 민주당 정부는 수구를 종식시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역사적 시효가 끝나 자연 소멸하던 수구를 부활시켰다. ‘박근혜 편지’는 수구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촛불혁명은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의해 촉발됐지만, 촛불의 명령은 그것을 바로잡는 것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러한 농단을 가능하게 한 심층구조, 즉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규정하는 왜곡된 구조를 변혁하라는 것이었다. 박근혜 탄핵의 역사적 의미는 외세 지배와 군사독재 시대에 기득권을 누려온 친일-독재 세력에 대한 탄핵이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 친일-독재 전통의 계승자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과 함께 이 땅의 수구세력도 해방 이후 70년 만에 자연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바로 이 죽어가던 수구가 되살아났다. 수구의 부활은 민주당 정부의 실책과 무능에 힘입은 바 크다. 소멸해가는 수구를 정치 무대에서 영구 퇴장시키지 못하고, 다시 ‘컴백’시킨 것이야말로 민주당의 가장 큰 역사적 과오다.

둘째, 민주당 정부는 우리 사회를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 정치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 재벌개혁, 복지개혁, 헌법개정 무엇 하나 번듯하게 해낸 것이 없다. 권력기관 개편에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이 전부다. 개혁은 변변히 이루지 못한 반면, 개혁세력의 분열은 심화시켰다. 조국 사태와 비례위성정당 논란으로 민주개혁세력은 전례 없는 분열을 겪으며 서로 적대시하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은 ‘촛불혁명의 계승 정당’으로서 시대적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그것은 지난 수십년간 독재의 폭압정치와 그 하수인들의 꼼수정치에 맞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올곧게 지켜온 민주개혁세력에게 커다란 실망과 비애를 안겨주었다. 권력과 돈과 명예보다 양심과 도덕과 명분을 중시하며 살아온 평범한 86세대는 최근의 엽기적인 사태들을 보며 자신의 젊은 시절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듯한 정체성의 위기를 절감한다. 양지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86세대 정치 엘리트들은 이들의 쓰라림을 헤아릴 수 없다.

한때 정의를 외쳤던 자들의 정치적 실패와 도덕적 일탈은 더 거센 후폭풍을 불러오는 법이다. 단기적으로는 그것이 초래할 선거 패배가 무섭고, 장기적으로는 그것이 몰고 올 냉소주의와 정치혐오, 거대한 무력감이 두렵다.

민주당의 최근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럽다. 그것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라는 촛불정신을 배반하는 것이다. 수구의 꼼수에 꼼수로 맞서는 것, 정책 비전이 아니라 ‘공포 마케팅’으로 승부하는 것은 촛불정당의 모습이 아니다.

민주당의 거듭된 실책으로 질 수 없는 선거가 질 수 있는 선거가 되었다. 수구세력은 통합하고, 개혁세력은 분열하고, 지지세력은 실망하고 있다. 위기다. 수구의 승리를 저지하려면, 지금이라도 촛불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민주개혁세력의 무기는 어디까지나 도덕성과 개혁성이지 꼼수와 기회주의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당이 비례정당을 만든 것은 자기부정이자 소탐대실이다.

민주당의 꼼수는 당의 역사에 대한 자기부정이기도 하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승리는 꼼수에 대한 정수의 승리였고,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였다.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를 통해 역사를 바꾼 ‘바보 노무현’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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