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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에서] 코로나19의 한가운데서 / 박주희

등록 2020-03-16 18:20수정 2020-03-17 13:03

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거의 한 달째 집콕이다. 가족이 확진자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함께 자가격리 생활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자발적 격리를 이어간다. 전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히 대구의 일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하루 수백명씩 확진자가 늘자 공식적인 일이 한꺼번에 멈췄다. 누가 확진 판정을 받거나 자가격리 중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전화나 이메일로 처리하기 힘든 일은 무기한 연기 상태다. 학교가 문을 닫고 건물 곳곳이 봉쇄됐다. 동네 가게들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나르던 노란 승합차도 자취를 감췄다. 번화가마저 텅 비었다. 그야말로 도시가 멈춘 듯하다.

첫 며칠은 다들 불안에 떨었다. 치료제가 없는 감염병이 번지는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단체 카톡방마다 생필품 사재기를 걱정하는 말들이 오갔고, 일부 언론에 보도된 마트의 텅 빈 진열장 사진을 보며 덜컥 겁이 났다. ‘왜 하필 내가 사는 도시인지’ 억울했다. 정말로 도시 전체가 봉쇄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사재기에 나서거나 피난행렬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마스크를 제외하고는 생필품이 동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치사율이 높지 않고 대다수가 경증환자라는 의학적 분석은 빠르게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대구 봉쇄’ 발언으로 떠들썩했을 때도 주위에선 이성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황 악화로 불가피하다면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했다. 감염병의 한가운데 갇힌다는 두려움도 컸지만, 행정과 의료체계 등 안정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 일정 기간 도시가 봉쇄되더라도 전기와 수도, 가스는 안정적으로 공급될 것이고, 전화와 인터넷도 평소처럼 쓸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필수적인 의약품과 생필품은 외부에서 공급될 거라고 믿었다. 재난 대응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류가 반복되고 있지만, 큰 틀이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담담하게 이 재난을 견디게 한다.

코로나19는 전방위적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대구·경북의 확진자 증가 폭은 줄었지만 세계적 대유행이 선포될 만큼 한 치 앞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환자 치료, 병상과 방역용품 부족, 의료인력의 피로 누적 등 매일 전투를 치르듯 대응 중이다. 소외계층의 막막함과 영세 상인, 중소기업의 어려움 등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도 막대하다. 전염병 자체만큼 모두에게 두려움이다.

이 재난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우수한 방역과 대응만은 아니다. 봄바람과 함께 밀려드는 따뜻한 소식들이다. ‘달빛동맹’을 맺은 광주 의료진이 대구로 달려와 주었고, 곧이어 전국 의료진들이 기꺼이 합류했다. 다른 지역 병원과 생활치료센터에서 대구 환자들을 맡아 치료한다. 기업과 단체들의 방역용품 기부가 끊이지 않는다. 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임대인’도 잇따른다. 온라인 맘카페가 어려움을 겪는 가게들 홍보에 나섰다. 영업을 접고 도시락을 싸서 의료진에게 전하는 식당들도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장애인이 쌈짓돈을, 아이들이 저금통을 털어 방역에 써달라고 내놓는다. 지역 시민단체들이 복지 사각지대를 꼼꼼히 살핀다. 이런 움직임들은 물리적 지원 이상의 큰 위안이자 버팀목이다. 날마다 우리 사회의 신뢰자원을 확인하며 안도하게 한다.

그 정점에 ‘마스크 양보’ 운동이 있다. 마스크 5부제의 내 차례가 와도 내 몫의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는 다짐이 꼬리를 잇는다. 삼삼오오 모여 재봉틀로 천마스크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눈다. 대구시청에는 개인들이 마스크 몇장씩을 담아 보내온 소포가 속속 배달된다. 아껴두었던 마스크를 택배기사에게 선물하며 손편지로 고마움을 전한다. 마스크 공장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일손을 거들고 있다. 덕분에 “사회적 거리는 두고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는 이들이 많다. 온라인 장보기로 부모님의 일상을 살피고, 뜸하던 지인들의 안부를 챙긴다. 사람끼리의 끈끈한 연대가 ‘심리적 방역’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재난의 불확실성에 흔들리지 않고 일상을 조용히 견디게 하는 힘이다. 함께 이 재난을 극복해 나가는 지금, 공동체의 믿음과 역량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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