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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미국의 사재기와 대구의 품격 / 안재승

등록 2020-03-17 18:24수정 2020-03-18 15:35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13일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화장지와 식료품 등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대형마트로 몰려가고 진열대는 텅 비어 있는 모습이 TV 뉴스를 통해 연일 전해지고 있다.

사재기는 비상 상황이 발생해 물건이 동나거나 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될 때 벌어지는 현상인데, 실제로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공급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사람들이 불안감에 빠져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사들이는 것이다.

사재기는 감염병처럼 번지는 속성이 있다. 불확실성이 클 때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 군중심리가 발동해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이 14일 아침 워싱턴 인근의 코스트코 매장에서 만난 미국인은 “왜 이렇게 휴지를 잔뜩 샀느냐”는 질문에 “나도 모른다. 사람들이 사길래 나도 샀다”고 말했다. 불안감에서 비롯된 사재기가 불안을 더 키워 사재기를 더욱 확산시키는 상승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 사재기가 ‘panic buying’이다. 특히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시민들은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앞다퉈 사재기에 나선다.

미국의 이번 사재기 사태는 트럼프 대통령이 증폭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은 안전하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기자회견에서 돌연 “오늘 나는 공식적으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실한 대응에 불만이 컸던 터에 갑자기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자 국민들이 공포감에 휩싸였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잘해나갈 것이다. 너무 많이 살 필요가 없다. 긴장하지 말고 진정하라”며 사재기 자제를 촉구했다. 월마트와 코스트코 등 주요 대형마트 최고경영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진열대에 생필품이 쌓여 있을 수 있도록 신경써 달라고 요청했다. 병 주고 약 준 꼴이다.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한달이 됐다. 지난달 18일 신천지 대구교회 집단감염 이후 확진환자와 사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도 대구에선 사재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정반대로 시민들 사이에서 ‘마스크 양보 운동’이 펼쳐졌고, 서문시장을 비롯한 상가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임대료 운동’을 벌였다. 식당들은 도시락을 만들어 시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의료진에 전달했다.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에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혔고 시민들도 조금씩 일상생활을 되찾아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 20일간 대구에 머무른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게 대구의 품격이구나라는 마음을 가졌다. 대구의 품격을 봤다”고 말했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생필품 사재기…코로나19에 무너지는 미국의 일상

▶ 관련 기사 : ‘코로나19 시름’ 한 달…대구, 연대와 단결로 희망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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