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경 ㅣ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이 한국 사회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시민들의 엄청난 분노가 확인된 이후 정부와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 몰랐다가 이제야 알았을까? 적어도 ‘엔번방 사건’ 국회 입법청원을 심의했던 국회의원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혼자 즐기는 것” “나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 사건이 집단적 공모에 의한 가공할 범죄행위임을 그들은 몰랐다. 왜? 관심이 없었고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원들만 특별히 무지했을까? 아니다. 2000년대 ‘소라넷’ 사건이 알려진 뒤부터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시민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온라인 성범죄는 근절되지 않았고 진화를 거듭해 ‘엔번방’에 이르렀다. 이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관심이 없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국회의원들을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증명되었다. 제대로 알고 해결이 절실한 정당과 국회의원이 몇명은 국회 안에 있어야 한다. 내 삶에 이 문제가 가장 절실한 시민들은 이를 최우선으로 투표하시라.
‘코로나19’로 세계가 대혼돈 상태다.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새로운 걸까? 아니다.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가 있었고, ‘코로나19’가 왔다. 물론 다음 버전도 예비되어 있다. 왜? 인간이 지구와 인간이 아닌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왔던 기존 방식이 만들어낸 산물이고, 우리는 지금도 살던 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땅을 파 뒤집고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내고 육식을 위해 대량 사육을 하고 화석연료 의존 시스템을 굳건하게 지탱해내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사회의 기성질서는 ‘코로나19’의 무한재생이 불가피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 체제를 벗어나는 것이 가장 절실한 시민들은 이 문제를 최우선으로 투표하시라.
지금도 연간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작업장(재해질환 포함)에서 죽어간다.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공사장이 무너지고 작업장에서 위험물질에 노출되어, 오토바이로 죽음의 곡예운전을 하다가, 초 단위를 다투는 택배나 집배원 일을 하다가 죽는다. 이 문제가 새로운가? 물론 아니다. 2018년 간신히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알맹이는 빠졌고 김용균씨가 죽어간 작업장은 규제 대상에서조차 빠졌다. 왜? 국회와 정부에는 ‘김용균씨’가 아니라 원청 대기업의 이익이 중요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가 바뀌는 게 지금 내게는 가장 중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21대 국회에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고 잘 알고 책임감을 갖는 정당과 정치인이 몇명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노동 문제를 최우선에 두고 투표하겠다.
내가 투표권을 행사해온 지난 32년 동안 국회는 늘 지금 거대 양당이 집권당이거나 제1당이거나 아니면 둘 다였지만, 그 결과는 ‘소라넷’은 ‘엔번방’이 되었고 원자력발전소 하나를 없애지 못했고 2천명이 작업장에서 죽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다. 그 긴 시간 동안 양당은 ‘저들이 제1당이 되면 나라 망한다’는 공포마케팅을 했다. 걱정 마시라.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정당이 180석을 얻거나, 집권당이 나 홀로 180석을 얻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수정당 의원 몇명 있다고 ‘국회가 바뀌겠나’라고 냉소하는 분들이 있다. 바뀐다. 17대 국회 10석의 민주노동당은 상가 임대차 보호, 무상급식, 산업재해 원청 처벌 강화를 주장했고 이후 모두 정책이 되었다.
저 두 당이 싫어서 투표하지 않겠다는 선거권자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우리에게 닥친 절실한 문제들에 비하면 저 두 당을 비난하는 것조차 사치다. 꼭 투표하시라. 어떤 선택이든 좋다. 우리의 냉소와 혐오는 ‘엔번방’이 뭔지도 모르고 김용균씨가 중요하지 않고 ‘코로나19’조차 공포마케팅거리로 전락시키는 국회를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