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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위성정당 역병…총선을 연기해야 한다

등록 2020-03-26 15:52수정 2020-03-27 14:01

장석준 ㅣ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지금 두개의 역병이 우리를 덮치고 있다. 하나는 물론 코로나19다. 이 신종 바이러스의 일격에 주요국 경제는 1929년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붕괴 과정에 돌입했다. 전례 없는 위기 앞에서 각국 정부는 신자유주의 전성기에는 상상도 못 했을 처방을 쏟아놓는다. 2008년 금융 붕괴 때도 보기 힘들었던 확장재정 정책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해고 금지나 임대료 면제 같은 ‘반시장’적 조치들이 발표된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이런 단기 대책을 넘어 중장기 대안에서도 전향적인 선택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가령 새로운 에너지 체제 구축에서 경제 회생 기회를 찾는 ‘그린 뉴딜’이 인류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한데 인류 문명 전체가 이렇게 너무도 급박하게 대전환을 요구받는 시점에 대한민국에서는 또 다른 역병이 함께 창궐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 경쟁이 그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서로 상대를 ‘독재’, ‘탄핵’ 세력이라는 무시무시한 적으로 지목하며 이런 적을 물리치려면 정당투표에서 자기편 위성정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협박한다.

위성정당이 헌법과 정당법, 선거법의 공공연한 위반이자 조롱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백주에 어찌 이런 범죄가 자행될 수 있는가? 이를 이해하려면, 촛불항쟁 이후 정치개혁이 배반당한 과정 전반을 복기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이후, 다음 과제가 국회개혁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국회개혁의 핵심은 양당 독점 구조를 혁파하고 시민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실현할 유력한 방도로 많은 이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지지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제20대 국회에서 체계적으로 왜곡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시작됐다가 이른바 준-준-연동형 입법화로 끝난 선거법 개정 과정이 그 1막이었다. 처음에는 촛불항쟁 자체를 부정하는 자유한국당(현재 미래통합당)이 선거법 논의를 방해했고, 다음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구실 삼아 선거법 개정안의 원래 내용을 끝없이 후퇴시켰다. 그 결과, ‘개혁’ 성과라 하기도 민망한 준-준-연동형이라는 기괴한 제도가 탄생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거대 양당의 훼방과 기만이 이런 괴물을 낳은 것이다.

작금의 위성정당 놀음은 이런 정치개혁 진압 과정의 제2막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도 미래통합당이 광란을 시작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빌미 삼아 전체 그림을 완성하는 모양새다. 한 정당이 여러개의 간판을 다는, 민주주의 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사기 행각이 무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인정을 받으며 진행 중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두 당이 만들려는 것은 양대 정당이 계속 독점 지배하는 제21대 국회다. 촛불항쟁 이후 치솟았던 국회개혁 열망을 모두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국회다.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개혁을 가로막고 뒤집으려는 퇴행적 시도가 인류 전체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재난과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가 코로나 이후 시대의 지향과 도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제21대 국회는 양당 카르텔을 넘어서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바탕으로 새 시대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러나 3주도 안 남은 총선은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을 기세다. 거대 양당과 그 위성정당들의 권력 놀음에 다시 4년을 허비해야 할 판이다.

최선의 해결책은 지금이라도 한국식 방역의 성과를 정치판에 적용해 역병이 더 확산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즉, 총선을 연기하고 위성정당들을 모두 해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이대로 총선을 치른다면, 제21대 국회의 운명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 나라 시민들은 이미 제 역할을 못 하는 대통령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다. 국회와 정당이라고 그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혁명’은 결코 대통령 기념사에만 등장하는 죽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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