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력기원전을 뜻하는 비시(BC)는 ‘비포 크라이스트’(Before Christ)의 약자다. 서력기원후는 에이디(AD)로 쓴다. ‘주의 해’를 의미하는 라틴어 ‘안노 도미니’(Anno Domini)의 약자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연호 기점으로 쓰는 이 서력기원이 공인된 건 에이디 523년이다. 당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정확한 부활절 계산법을 의뢰받은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창안했다. 이전까지는 로마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즉위년을 기점으로 연도를 셌다. 그런데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재위 기간 기독교를 강력하게 탄압한 이른바 ‘대박해 시대’를 이끈 황제다.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의 즉위 기원 대신 예수 탄생년을 새로운 기점으로 채택하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 247년이 에이디 523년으로 바뀌었다.
최근 서력기원의 비시와는 또 다른 역사적 기점으로서 비시가 언급되고 있다. ‘비포 코로나’(Before Corona)의 줄임말이다. 코로나19 사태 전과 후로 역사 풍경과 사회 경로가 확연하게 갈릴 것이라는 관측을 담은 표현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인 비시(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인 에이시(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라고 썼다. 일부에선 코로나 대신 질병(Disease)을 붙여 코로나 이후를 아예 에이디(After Disease)로 부르기도 한다.
당연히 이런 진단이 실제 연호 기점을 바꿔 쓰자는 건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그만큼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용도다. 물론 코로나19 이전 최대 팬데믹이었던 스페인 독감(1918~20년) 때도 커다란 혼란과 변화를 겪긴 했지만 전면적인 구조 변동까지 야기되지는 않았다는 반론도 있다. 이번에도 변동 가능성만 과도하게 부풀릴 필요는 없다는 신중론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글로벌화, 디지털화됐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장벽의 시대’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100년 전과는 또 다를 충격파를 이겨낼 지혜 모색이 절실한 때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