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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전향 엘리트들의 강박적 망언 / 안영춘

등록 2020-04-13 17:19수정 2020-04-14 02:41

‘전향’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 기원은 1922년 일본공산당 창립에 참여했던 야마카와 히토시가 그해 잡지 <전위>에 발표한 ‘무산계급운동의 방향전환’이라는 논문이다. 이후 ‘방향전환’은 ‘전향’이라는 축약어로 널리 쓰였다. ‘변절’의 뉘앙스는 없었다. 오히려 운동의 ‘참된 방향전환’이라는 맥락에서, 능동적 주체가 변증법적 전화 원리에 적극적으로 적응해가는 ‘자기 지양’의 의미가 강했다.

전향이 부정적 의미를 띠기 시작한 건 1930년대 들어서다. 사상경찰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이 개념을 급진파 학생들의 생각을 순치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관련 기술을 고안해 책자를 발행하고, 체포·구금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전향은 ‘자기 지양’에서 ‘투항’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살이 타고 피가 튀는 장면은 드물었다. 강제 전향보다 자발적 전향이 많았다. 1933년 일본공산당 위원장 사노 마나부와 중앙위원회 위원 나베야마 사다치카가 감옥에서 자발적 전향을 선언했고, 이후 한달 안에 공산당 관계자 가운데 미결수의 30%, 기결수의 34%가 전향했다. 비전향은 26%에 그쳤다. 전향자들은 천황제 폐지, 모든 민족의 자치를 위한 투쟁 노선을 철회했다.

이들에게는 공통된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대부분 도쿄제국대 법학부의 정치 동아리 ‘신인회’ 출신이었다. 거의 다 도쿄제국대 예과 성격의 도쿄고 출신이기도 했다. 전향 이후에도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사노 마나부는 당적 이탈을 밝히지도 않은 채 그때까지의 태도를 부정하는 성명을 냈다. 다른 이들도 줄줄이 따라 했다. 이 “제도 통과형 수재들”(후지타 쇼조)은 한번 지도자로 뽑히고 나면 “정치적 의견이 바뀌더라도 계속 지도자로 남을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쓰루미 슌스케)

오늘날 한국 전향 엘리트들은 훨씬 적나라하다. 이번 총선에서 망언을 일삼는 이들의 면면을 보라. 그들은 권력에서 멀어지는 것과 대중에게 잊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말의 품격 따위는 걷어차고 오로지 튀어야만 잊히지 않고 지도자로 남을 수 있다는 강박에 빠져 기꺼이 제 입을 더럽히고 있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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