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이 상부하지 않는 예로 ‘금배지’만한 물건도 드물지 싶다. 한국 국회의원의 상징물 금배지는 소량의 금으로 도금돼 있으며, 99%는 은으로 돼 있다고 하니 실상은 은배지다.
처음부터 은배지였던 건 아니다. 애초엔 순금으로 만들어진 명실상부한 금배지였는데, 1981년부터 도금배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배지 성분의 변화가 특권의 폐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금배지는 지금도 여전히 권력과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성분을 바꿀 게 아니라 아예 배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2016년 10월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이 운영하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가 의원 배지 폐지를 권고한 바도 있다.
변한 건 성분만이 아니다. 문양도 여러 번 바뀌었다. 자주색 동그라미를 바탕으로 한 금색의 무궁화 꽃 모양 안에 ‘국회’라는 글자를 새긴 지금의 형태는 2014년에 채택됐다. 그 이전에는 ‘國’이란 한자가 박혀 있었다. 한때는 의혹을 뜻하는 ‘或’으로 오해되는 모양을 띤 적도 있는데 문양 변경의 계기가 됐다.
15일 치러진 총선에 따라 구성될 21대 국회에서도 금배지의 역사는 이어진다. 국회사무처가 21대 국회의원들에게 배부할 배지를 지난 13일 공개했다. 지름 1.6cm, 무게 6g이다. 배지 뒷면에는 1~300까지 일련번호가 매겨져 등록 순서에 따라 국회의원 당선자들에게 무료로 배부된다. 임기 종료 때도 반납하지 않는다. 분실했거나 추가 구매를 원할 경우 1개에 3만5천원을 내야 한다.
금배지를 제작한 ‘동광기업’ 쪽에 원가를 물었더니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재료 가격이 들쑥날쑥하는데다 서른 가지 이상의 복잡한 공정을 거쳐 만드는 물건이라 원가 공개가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점은 21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의 성별과 무관하게 ‘자석형’ 배지가 배부된다는 대목이다. 20대까지는 남성은 ‘나사형’, 여성은 ‘옷핀형’으로 의원 성별에 따라 지급되는 배지가 달랐다. 성별 구분의 종말이 특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당선자들 모두 배지에서 특권과 예우 대신 책임과 봉사의 뜻을 읽어내기를 바란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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