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유 l 한신대 경제학 교수
코로나 감염 위기의 고비를 겨우 넘나 싶은데 경제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연결 고리에 고용 위기가 있다. 도시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산과 서비스 활동, 즉 일의 즉각적 중단을 의미한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는 생산과 금융의 위기가 먼저 오고 고용 위기가 뒤이어 왔다. 이번에는 고용 위기가 더 직접적이고 더 급격하게 다가왔다.
많은 나라가 이념이나 효과를 따지지 않고 모든 정책들을 ‘풀 패키지’로 내놓고 있다. 일차적으로 일자리 우선 정책을 펴고 있다. 자본에 대한 타격보다는 노동에 대한 충격이 강하고 크게 왔기 때문이고 노동 충격은 인적 자본이나 관계 자본의 손실 등으로 후유증이 장기적이란 것을 지난 위기 때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요 측면의 피해는 재정, 금융 정책으로 대응이 가능하지만, 공급 측면의 노동에 주는 피해는 쉽게 복원되지 않고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일자리 유지 정책, 실직자 소득 지원 정책, 일자리 창출 정책 등 모든 정책 수단과 가용한 예산을 동원하고 있다. 단기간에 매우 심대한 고용 충격을 초래한 이번 위기에는 기업 또는 직업, 업종 특수적 숙련과 매칭이 상실되지 않고 보전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위기가 완화될 때 가능한 한 이전 직장, 이전 직업, 이전 업종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평소 300억원 수준에서 5천억원으로 확대한 것은 적절하다. 실업급여도 3월에는 거의 월 1조원 수준으로 지급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고용 대책이 기존 제도와 정책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이번 위기의 가장 직접적이고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그날 벌어 그날 살아가는’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플랫폼노동 종사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용역파견근로자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들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1997년 외환위기는 정규직 임금노동을 집중 타격했다. 이후에 만들어진 제도와 정책들은 이들에게 맞추어 설계되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특수형태근로 종사자에 대한 긴급생계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기존의 고용보험 전달체계나 지자체 전달체계로는 이들을 제대로 지원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용 지위를 따질 필요가 없다면,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그리고 금융기관을 결합하는 긴급전달체계를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이 위기를 계기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소득의 원천과 변동 그리고 자산 소유 정도를 적어도 월 단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비정형 노동 종사자들의 소득이 감소하거나 상실된 경우를 빠르게 파악하여 직접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고용 지위가 아니라 소득 기반의 전달체계 실험은 향후 보편적 일자리 보험 구축에 중요한 경험적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위기 시 계약 해지된 비정형 노동 종사자들도 위기가 완화되면 이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고용주가 아니라 사용자가 계약을 유지하도록 할 유인이 필요하다. 사용자 기업 대출 시 재계약 조건부, 리콜 조건부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도 국세청과 금융기관 등의 밀접한 행정 연결과 협조라는 전달체계 혁신이 요구된다. 위기는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번 위기에서 제도적 허점의 하나로 드러난 것이 있다. 유급병가 제도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그렇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시정 조치에 유급병가 제도를 포함시키는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지난 20여년 고용과 복지 관련 정책과 제도가 치밀하고 정교해졌지만 제도가 사람을 구속하는 경직성도 커졌다. 사람이 제도에 맞추어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제도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은 제도를 바꾸는 주체이다.
비정형 노동 종사자들의 일자리 안전망 사각지대 문제를 위기를 기회 삼아 해결해보자. 위기로 지불된 엄청난 사회적 비용도 회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위기는 인류 진화의 성공 요인이다. 긴급구호가 우선이지만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정책 실험과 혁신이 고용 정책에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