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등이 지난달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4일 세계 경제에 대한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하반기에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경우를 가정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3%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보다 50% 정도 더 장기화할 경우 성장률 전망치는 -6%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인도처럼 성장률이 높은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효과를 고려할 때 세계 경제 성장률이 2% 이하면 사실상 경기침체로 보는데, 이것이 마이너스로 갔으니 그 심연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국제통화기금이 대공황을 비교의 잣대로 언급했으니 그때를 한번 되짚어보자. 대공황은 1930~33년 시기를 말한다. 당시 데이터가 잘 관리돼 있는 미국의 경우, 대공황 첫해인 1930년 -8.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기구의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5.9%다. 대공황과 직접 비교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이에 대한 대책도 비상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거의 100년 만에 경제공황 사태를 맞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여태 써보지 않은 새로운 정책대안들을 고안해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고 있다. 우리도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등 나름 과감한 조처를 취하고는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 위기와 금융불안이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엔 여전히 미흡하다. 코로나19 방역은 세계 최상급이나 ‘경제 방역’은 이에 못 미친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금융안정 대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가 지난달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마련해 발표한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100조원+α’ 대책에 투입되는 재원의 대부분은 민간 금융회사와 정책금융기관들이 부담한다. 재정 보증이 들어가 있지 못하니 손실 발생 우려가 있는 금융지원은 기피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한 예로, 현재 가장 큰 불안 요소인 증권사 기업어음(CP)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또한 산업은행 같은 정책금융기관은 대출 여력이 거의 바닥이 난 상태라 앞으로 발생할 기업 부실 사태의 방어막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시장 저변에서 불안감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한국은행이 16일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에 ‘AA-’ 등급 이상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최대 10조원의 대출을 해주는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를 신설하기로 한 결정도 파격적인 조처이긴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시장에서 매입하지 않으려는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지난달 22일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투기등급(BB-)으로 떨어진 회사채까지 직접 매입해주기로 한 조처에 견줘 보면 한은 결정의 한계를 가늠할 수 있다.
경제의 상당 부분은 심리가 좌우한다. 특히 경제주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미래가 불안하면 소비자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선 재정이 든든한 뒷받침이 돼 과감한 정책 프로그램을 선제적으로 내놓을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제4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업이 도산하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고 한 발언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넘어 주력 산업 기업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비우량·우량 기업을 모두 촘촘히 지원하는 것으로 기업을 지키려는 특단의 선제조치인 동시에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실행 방안은 아직 부실하다. 주요 원인으로 재원 마련에 관한 기본 방향이 잘못 짜여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1차 비상경제회의 논의 결과를 보면, 정책금융기관 등이 먼저 자체 재원을 통해 지원을 강화하고, 한은이 절반 수준에 대해 유동성을 지원하며, 재정은 추후 손실 발생 시 뒷받침하는 것으로 돼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위기 상황인데도 재정은 맨 나중에 ‘등판’하겠다는 얘기다. 재정건전성을 철칙으로 삼아온 재정 관료들의 사고방식이 짙게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재정을 기반으로 코로나19 경제대책의 큰 틀을 짠 미국·유럽 주요국과 다른 접근법이다.
발표 당시에는 과감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책도 불과 한주만 지나면 미흡한 것으로 여겨지는 비상한 시기다. 다음주에 열리는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선 세계적 공황 시기에 국민과 기업을 지켜낼 새로운 접근법이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현 경제부 기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