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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총선 이후, 새로운 사회협약으로 / 신진욱

등록 2020-04-21 18:30수정 2020-04-22 14:08

신진욱 ㅣ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비일상적 일상이다. 거의 매년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중요 선거가 치러지고, 그때마다 선거는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과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2020년 4월15일의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여러 면에서 유난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세계 많은 나라가 코로나19로 인한 중대한 보건 위기에 처해 있고 미국·프랑스 등 현대 민주주의의 선구자들이 선거를 취소하거나 연기해야 했던 상황에서, 한국의 선거는 위기 속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성취하고 또한 민주주의를 통해 위기를 더 잘 극복할 수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더구나 투표율은 놀랍게도 66.2%에 이르러 1992년 14대 총선 투표율 71.9%에 뒤이어 거의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투표율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저점을 찍은 뒤에 꾸준히 증가했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생기를 잃고 있는 시대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혈기가 왕성하다.

선거 결과 또한 의미심장하다. 물론 총 의석 분포, 지역구 의석, 정당득표율, 지역 정당득표 등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권자들이 총출동하여 맞붙은 중원의 격돌에서 여권이 역사적 대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무려 총 의석의 60%다.

여권 압승의 원인을 어디서 찾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두 극단의 설명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한쪽 극단은 우연론이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외생 변수가 끼어들어 운 좋게 여당이 이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외생 변수에 일본의 아베 총리,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이 급락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를 잘 막느냐가 변수였다.

반대쪽 극단은 필연론이다. 유권자 구성이 진보화해서 보수가 이길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현재 유권자 배열의 중심축은 신진보 3040 대 구보수 60 이상의 구도다. 여기에 구진보 50대와 신보수 20대라는 측면 변수가 있다. 인구 구성상 4050이 가장 많고, 20대 보수는 구보수 야당을 안 찍는다. 지형이 바뀐 건 맞다. 하지만 미래통합당 출범 이후 여론조사 결과는 여권을 긴장시켰다. 보수의 패배는 필연이 아니었다.

구조적 조건과 단기 변수 사이에, 정치주체들의 행동과 역학관계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는 불확실성의 지대가 있다. 거기서 여야가 갈렸다.

여권은 총선 지지를 호소하거나 보수 야당을 비난하는 등의 당파적 행동을 자제하고, 국가적 위기 대응이라는 긴급한 국민적 과제에 집중했다. 그것을 선거 전략이나 정치적 계산으로만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중요한 건 무엇을 했고, 이뤘느냐다. 정부는 잘해냈고, 그에 대한 상을 받았다.

그에 반해 보수 야권의 입들은 종북좌파 척결, 자유민주주의 수호, 공산화 위험 같은 과격한 슬로건으로 구시대적 이념공세를 계속했다. 국가적, 세계적인 위험 상황에서 다수 국민이 공감은커녕 이해도 할 수 없는 태도였다. 미래통합당은 현재와 접점을 상실하고 지나간 시대에 붙잡혀 있는 과거통합당 같아 보였다.

이번 총선의 교훈은, 누가 이길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공간에서 국민의 절박한 문제와 요구에 집중하는 정치가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대응 자세와 능력이 앞으로 상당 기간 정치 역학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위기와 격동은 방역 차원에 그치지 않고 경제·사회정책과 외교·안보 차원으로 확장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할 시간이다.

지금으로부터 370년 전에 토머스 홉스는 국가가 시민과의 계약으로 공적 권능을 부여받아 이행할 책임이 시민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바이러스의 공격에 직면한 한국의 국가와 시민은 여러 안타까운 희생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 성공적으로 시민의 생명을 지켰다. 그리고 이번에 활기찬 선거 실시를 통해 그 무엇도 민주주의와 자유를 막을 수 없음을 세계에 과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 거세게 밀어닥칠 세계적 경제침체와 민생의 위기에 맞서 한국 사회의 철학과 제도,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킬 새로운 사회협약을 창출하는 과제다. 경제, 고용, 소득, 교육, 돌봄을 아우르는 위기 대응과 제도 혁신이라는 목표를 위해 21대 국회의 여야가 건설적으로 경쟁하고 협력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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