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번뇌는 중생의 뭇 괴로움을 일컫는 불교 용어다. 108은 원래 인도에선 ‘큰 수’를 의미했다고 한다. 많은 괴로움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었는데, 교리가 정교해지면서 실제 108가지를 분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가장 일반적인 분류법은 눈, 귀, 코, 혀, 몸, 마음 6개 감각기관의 작용을 세분화하는 방식이다. 이들이 사물을 접할 때 생겨나는 세가지 인식 상태와 세가지 마음 상태를 각각 곱해 더하면 36가지 번뇌가 산출된다. 이에 다시 전생·현생·내생 3개 시간대를 곱하면 108이 된다.
모감주나무 열매 108개를 엮은 염주를 돌리거나 108배를 올리는 등의 불가 의례는 백팔번뇌를 끊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백팔번뇌가 정치권 내 특정 집단을 칭하는 말로 쓰인 적도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뽑힌 초선 의원들을 묶어 이렇게 불렀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힘입어 152석 단독 과반을 차지했는데, 이 중 108명이 초선이었다. 상당수는 386 운동권 출신으로 처음 도전한 총선에서 “길 가다 지갑 주웠다”(고 노회찬 의원)는 말을 들을 만큼 무난하게 금배지를 달았다. 강한 개성과 개혁성을 과시했지만, ‘중구난방’ 각자 주장만 펴 당의 단결·집중력을 흩뜨리는 등 번뇌를 자아냈고 결국 과반 여당의 정국 주도권 상실에 일조했다는 비판 또한 받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최근 거듭 ‘열린우리당의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이 대표는 4·15 총선 당선자 전원에게 친전을 보내 “(17대 총선 뒤) 우리는 승리에 취했고, 겸손하지 못했다”며 “그 결과 17대 대선에 패했고 18대 총선에서 81석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돌이켰다. 이어 “자신의 생각보다 당과 정부, 국가와 국민의 뜻을 먼저 고려해서 말과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과반 여당의 실패가 어찌 초선들만의 탓일까마는, 당시 여당에 요구되는 절제와는 거리가 있었던 ‘108번뇌’에 대한 반성 또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과 비례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 소속 초선은 85명. 그때보다 크게 줄었다.
손원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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