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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에서]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일상은?

등록 2020-04-27 18:12수정 2020-04-28 14:11

명인(命人) ㅣ <회사를 해고하다> 저자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남도의 끝자락 전남 고흥군. 전세계가 코로나19로 난리가 났지만 아직 확진자 한명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이후 나는, 그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곳, 그 일상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입시나 취업 준비가 공부의 전부가 되고, 사람을 한우처럼 등급 매기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삶의 원리가 되고, 학교로도 모자라 학생들을 학원으로 돌아치게 하는, 교육을 포기한 것이 교육인 그곳?

날마다 야근하고 특근하며 세계 최장 노동시간 1, 2위를 다투는 그곳? 일하다가 하루에 네댓명씩 죽어 나가는 그곳? 회사의 은폐와 압력으로 산재 사망률에 비해 재해율은 놀랍게도 낮은 그곳? 직장에선 사람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버리는 그곳?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라 일을 해도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인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그곳?

쌀은 1년에 평균 1인당 한가마니도 못 먹고 유기농산물은 비싸서 못 사 먹지만 온갖 영양제에 건강보조식품은 불티나게 팔리는 그곳? 광우병이 돌면 돼지고기 먹고, 돼지열병이 돌면 닭고기 먹고, 조류독감이 오면 소고기 먹으면 되는 그곳? 집집마다 대형 냉장고는 찬장처럼 쓰지만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시간은 별로 없는 그곳? 수입산 곡물 77% 소비에 곡물은 물론 전체 식량자급률도 턱없이 낮은데, 쌀값이 3배가 오르는 동안 강남의 아파트값은 84배나 오른 그곳?

수십개의 채널에서 광고는 끊임없이 신제품으로 유혹하고, 멀쩡하게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날마다 어마어마한 쓰레기로 쏟아져나오는 그곳, 배달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든 말든 ‘로켓배송’, ‘총알배송’, ‘새벽배송’, ‘슈퍼배송’ 그 어떤 광고도 규제되지 않는 그곳, 밥상에 오르는 생선 배 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나오든 말든 수도 없는 플라스틱 제품들이 쏟아져나오는 그곳. 그것을 위해 화석연료는 마치 한이 없는 양 써젖히고, 거침없는 탄소배출로 일상화된 미세먼지에 마스크와 공기청정기가 필수품이 된 그곳? 빨래는 햇볕 대신 건조기에 말리고, 의류 스타일러까지 갖추면 금상첨화인 그곳?

우리는 너무 오래도록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상을 정상으로 여기고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런 일상에 대한 경고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끊임없이 있었다.

빙하가 녹아 살 곳을 잃은 북극곰의 이야기는 우리와 너무 멀었다 하더라도 철마다 보아온 꽃들은 두서없이 피고 졌다. 지역에서 자라던 작물이 더는 자라지 않았고 잡히던 물고기가 더는 잡히지 않으며 키우던 가축이 살처분되는 걸 목격해왔다. 사계절은 희미해지고, 폭염으로 견디기 어려운 여름을 지나면 삼한사온이라던 겨울은 너무 춥거나 겨울답지 않게 더웠다. 장마도 아닌데 느닷없이 큰비와 태풍이 덮치고 때아닌 가뭄도 자주 들었다. 이제, 몇달 동안이나 꺼지지 않는 산불이 세상을 휩쓸기 시작했고, 인수공통 전염병이 만연하며 바이러스도 세계화의 물결을 따라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결국 바이러스는 기후위기와, 기후위기는 재난자본주의와 이렇게 맞물려 있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의 헤더 알버로 부교수에 의하면 ‘화석연료회사 20개가 1977년 초 기후변화의 과학에 대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의 3분의 1에 기여’했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10%의 소비는 지구 소비 기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0%를 생산하는 반면, 가장 가난한 인류의 절반은 10%만 거기에 기여’하며, ‘현재 전세계의 절반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는 억만장자가 26명에 불과해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모든 재난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덮쳐온다.

에코백이나 텀블러를 쓰는 것으론 문제의 해결이 어림없고, 우리가 선거 때의 투표만으로 시민의 정치적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기 어려운 이유다. 다시는 이전의 비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저마다의 자리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시작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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