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ㅣ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하기 위한 계획에 한국판 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양적완화가 그렇듯이 ‘한국판’이 붙으면 왠지 미심쩍기도 하지만 대공황을 극복한 뉴딜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뉴딜은 단지 정부가 재정을 써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린 노력만이 아니다. 토목공사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고 일관된 재정 확장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뉴딜은 고삐 풀린 시장자본주의의 붕괴를 국가의 개입으로 극복하고, 기득권에 맞서 권력관계와 불평등한 경제를 개혁한 새로운 계약이었다. 1935년 와그너법은 단결과 단체교섭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여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했다. 또한 사회보장법은 고용보험과 연금 등의 사회안전망을 확립했고 루스벨트는 부자들에 대한 최고소득세율도 높이 인상했다.
한국판 뉴딜에 던져야 할 질문도 경제의 대전환을 위한 어떤 청사진과 의지가 있는지다. 먼저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 관해 물어보자. 전염병의 피해는 훌륭하게 막았지만 산업재해로 오늘도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불황은 이미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3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22만5천명의 종사자가 감소했는데 주로 음식점업과 소매업 등 저임금 서비스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정규직에 비해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소득이 훨씬 크게 줄어들었다고 보도된다.
정부도 10조원 규모의 고용안정 특별대책을 제시하고 영세자영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 등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게 1조5천억원의 고용안정지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용보험 바깥의 취업자가 절반이나 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청와대도 운을 뗀 전 국민 고용보험이나 한국형 실업부조와 같은 안전망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한국판 뉴딜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는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추진하면서도 기업을 지원할 때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삼겠다고 했지만, 산업은행법 개정안에서는 모호한 문구로 바뀌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여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정책은 아쉬움이 크다. 노조 없는 90%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하며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국제노동기구의 핵심협약도 비준하지 않았다. 21세기 한국판 뉴딜은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 그리고 새롭게 나타나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계약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공공투자와 국가사업의 방향에 관한 질문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만들어지겠지만, 정부는 먼저 디지털 경제의 신산업 육성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원격의료 등 몇몇 신산업의 투자 촉진을 위한 규제완화가 한국판 뉴딜의 주된 내용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디지털과 물적인 사회기반시설, 공공의료 등의 사회서비스, 그리고 기업가적 국가의 관점에서 전기자동차 등 미래산업에 대한 공공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하고 번영을 이루는 데도 2차대전 시기 군사부문과 함께 신기술부문에서 위험을 감수한 적극적인 공공투자가 큰 구실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서구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그린뉴딜에 주목할 만하다. 그린뉴딜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중심의 경제를 만들어내는 대담한 계획이다. 정부의 대규모 공공투자로 환경친화적 산업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전환과정에서 노동자를 지원하여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한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보다 더 큰 재앙인 기후변화와 한국의 부족한 대응을 생각하면 한국판 뉴딜도 녹색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재난 앞에서는 개인의 이해보다 협력과 공동체의 소중함이 커지고 보건과 경제의 이중위기에 맞선 일종의 전시상황은 국가의 역할을 강화시킬 것이니, 새로운 질서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랬듯이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한국에서 취약한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공공투자로 불황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뉴딜이 나타날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세계의 변화는 결국 위기를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정치적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국판 뉴딜의 미래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