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 ㅣ 농부·<똥꽃> 저자
온라인 양식을 만들어 재난소득(재난지원금) 기부운동을 벌인 지 한 달여 된다. 내가 어느 누리소통망에 전액 기부 의사를 밝혔더니 이를 보고 생협에서 일하는 후배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사회운동으로 벌여나가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시작된 것이다.
한 사람씩 참여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내가 참여하는 농민단체나 명상단체, 인문학단체 등의 참여자가 많았다. 총선 전에 만들어진 ‘농민기본소득 추진 전국본부’ 사람들도 참여했다. 공식 의결기구를 통해 기부운동을 결의한 단체도 두 개 생겨났다. 내가 불쑥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산나물을 뜯던 때였다.
나야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해고될 위험이 있나, 아이들은 다 커서 자립했고, 농협에 빚도 없으니 날아들 독촉장도 없지 않은가. 산과 들에는 먹을 봄나물이 넘쳐나고 밭에는 작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술 담배도 않고 채식을 한다. 자동차도 없이 자전거를 타니 돈 들 일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날 벌어 그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길어진 코로나 사태로 국민들은 한시가 급한데 정치권에서는 총선이 끝나고도 재난소득의 지급 대상과 총규모를 놓고 갑론을박을 하면서 70% 국민만 주느냐 아니면 모든 국민에게 주느냐를 가지고 또 논란을 벌이는 모습이 답답하던 때였다.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이 불안과 경계에 빠지지 않고 같은 처지인 이웃과 나누면 믿음과 자긍심이 생긴다는 것이 기부 취지였다. 나눌수록 커지는 원리라고나 할까.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오래되었지만 중요한 실험이 있다.
하루에 도토리 10개를 먹으면 만족하는 다람쥐 10마리를 한곳에 모아 놓고 100개의 도토리를 주면 더 가지려고 싸움을 벌이지만 도토리를 200개나 1천개를 주면 싸우지 않고 10개씩만 먹고 만족해한다는 것이다. 불안과 경쟁이 집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실험이다.
재난소득 기부운동을 시작할 때 기대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무상급식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재난소득이 선례가 되면서 조만간 국민 기본소득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꿈이다. 일찍이 녹색당 농민특위와 농민 기본소득 전국본부에 몸을 담으면서 논쟁을 다 거친 것인데, 부자들에게도 재난소득을 주는 것은 논쟁거리가 아니다. 모두에게 주면 5분위 소득 격차가 줄어든다는 산술적 계산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민 기본소득제(국민 배당금제)라는 철학의 바탕이 그렇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물론 일반 서민은 늘 재난 상태다. 양극화의 심화 현상이 이를 말해준다. 청와대에 취업 상황판을 걸어놓고 매일 닦달을 해도 일자리는 줄어들고 실업자는 늘게 되어 있다. 기계가 몸 노동을 대체한 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서비스 분야와 감정노동, 창의적 노동까지 꿰차고 있다. 부자들은 주식과 부동산, 파생상품 투자로 가만히 앉아서 돈벼락을 맞는다.
인생 낙오자들이 생겨나 은둔형 인간이 되든지 아무나 폭력 분출의 잠재적 당사자가 된다. 경쟁에서 이겨 돈을 벌어도 불안과 불신에 기대어 새로운 경쟁의 동력을 만들어내야만 하니 참으로 인생이 고단하다. 현대 재난사회의 전형이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지구 유기체의 배당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국민 기본소득제가 등장한 배경이다.
재난소득(재난지원금) 기부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 국민에게 재난소득을 주는 첫 고개를 넘어 국민 기본소득 경제체제로 가는 도화선이 되고자 한다. 단돈 천원의 기부도 좋다. 공동체를 살리고 미래세대를 살리는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