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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문 대통령의 ‘주류 교체’ 꿈, 문턱 넘었지만 / 손원제

등록 2020-05-19 16:25수정 2020-05-20 02:08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보건총회(WHA) 초청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보건총회(WHA) 초청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당위성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한 말이다. 이해에 나온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는 문 대통령의 ‘주류 교체’ 열망이 곳곳에 배어난다.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구체적인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주류 정치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데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느껴집니다. (…) 무엇보다 대청산, 대개조를 위한 청사진을 국민과 함께 실천해야죠.”

문 대통령은 어려서 역사가를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주류 교체의 열망 또한 역사가의 관점에서 표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그는 광복 이후 우리 사회 주류의 역사를 친일세력의 변천 과정으로 바라본다.

“친일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허위의 세력’이 이기적 욕망을 채워온 흑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역사관의 인장이 선명하다. 3·1절이나 5·18 기념식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류세력이 배척한 독립운동세력과 민주화운동세력의 복권을 강조하는 것은 그 연장선상일 터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기할 점은 문 대통령이 주류 교체의 역사적 당위성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실제 주류 교체를 이뤄내는 방식을 두고는 ‘민주개혁’ 진영이 배출한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보수적인 접근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세력 교체의 기본 전제인 집권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안보, 국방, 국가관, 애국심, 이런 부분들”이라고 자인한다. 그러면서 “‘안보와 경제’라는 국가를 떠받치는 두 기둥에 대해서 우리가 유능하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수권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보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한 세력”이라는 일반적 프레임과의 정면 대결 선언이다. 유능함이라는 상징을 보수가 독점하는 구조를 깨야 집권하고 주류 교체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뒤 1년여 평가를 거쳐 이런 구상을 내놨다. 이후 흔들림 없이 끌고 온 결과가 2016년 총선 이래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4연승, 곧 보수정당의 4연패로 나타났다고 본다. 그는 2016년 총선에 대해 “경제에서 야권이 우위에 선 첫번째 선거였다. 항상 경제는 새누리당이 유능한 것처럼 오도돼왔는데, 그것이 무너졌다”고 자평했다. 4년 만의 4·15 총선에선 ‘코로나 위기’와 겹쳐 ‘유능 보수’ 담론 지형이 붕괴했다. 미래통합당은 ‘중국 봉쇄’ 프레임에 갇혀 당국의 대응을 훼방 놓는 존재로 부각됐다. 문재인 정부는 ‘개방성과 투명성, 민주성’의 원칙을 밀고 나가 ‘방역 선진국’ 위상을 아로새겼다. 국정 능력이 최우선 선택 기준이 된 ‘국난’ 상황에서 ‘유능함’을 각인시킨 정부·여당과 ‘발목잡기’로 표상된 통합당이 맞붙었고, 결과는 아는 대로다.

그렇다면 ‘주류 교체’는 드디어 실현된 것일까? 문턱은 넘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유능함이라는 주류의 상징을 보수정당이 독점하던 시절은 끝났다. 정부·여당에 드리운 아우라가 더 크다. ‘선진국 콤플렉스’를 깬 케이(K)방역의 성공담을 공유하는 세대가 탄생했다는 점도 가산 요인이다. 박정희 시대 산업화를 일군 구세대가 보수정당의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듯이, 코로나 세대의 집단 성취감도 정치적 선택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취가 잠정적이라는 건 약점이다. 방역 성공이 ‘코로나 이후’의 성취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경제·민생에서도 집단 자부심을 창출할 수 있다면 주류 교체는 돌이키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한국판 뉴딜’이 그걸 가능케 할 정도인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그러니 통합당에도 기회의 창은 다 닫히지 않았다.

손원제 ㅣ 논설위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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