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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 이강국

등록 2020-06-01 16:29수정 2020-06-02 09:30

이강국 ㅣ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바이러스는 평등하다. 바이러스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세포막에 달라붙고 침투하여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전염병은 평등하지 않다. 똑같은 바이러스지만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사망에 이르는 정도는 소득과 직업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사망자가 10만을 넘은 미국의 현실은 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외신에 따르면 4월 초 시카고에서는 흑인이 전체 인구의 32%지만 코로나19 사망자 중에서는 67%를 차지했다. 일리노이주나 미시간주는 더 큰 차이가 났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뉴욕시에서도 5월30일 현재 흑인과 히스패닉의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자 비율이 백인보다 두 배나 높다. 또한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퀸스의 가난한 지역이 맨해튼 남부의 부자동네보다 인구대비 감염자수가 4~5배나 높다.

이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음식점이나 소매업, 간호사나 요양사 등 이들의 일자리는 재택근무가 어렵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업들은 주로 금융계나 정보기술 등의 고임금 일자리로 재택근무 비율과 소득은 정반대의 관계를 보인다. 또한 미국의 저소득층은 당뇨나 천식 등의 기저질환이 많고 평균수명이 짧으며 의료보험 미가입자도 약 3천만명이나 된다.

방역이 성공적이었던 한국에서도 최근 1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나온 부천 쿠팡 물류센터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한복과 신발은 세탁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함께 사용했고, 회사는 확진자를 숨기고 수백명을 출근시켰다. 사람들 대신 상품들이 움직여 세상이 돌아갔지만 그 뒤에는 바이러스에 취약한 열악한 노동환경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저가배달을 위한 경쟁 속에서 최대한 비용을 줄이기 위한 플랫폼 기업의 노력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그 물류센터 노동자 3790명 가운데 정규직은 98명이고 아파도 쉬기 힘든 일용직이 2588명, 계약직이 984명이었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전염병으로 인한 심각한 불황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10주 동안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4000만명을 넘었고 실업률이 20%에 이를 전망이다. 주로 유색인종과 저임금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고착된 불평등은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사건 이후 터져 나오고 있는 흑인들의 분노를 부채질했을 것이다.

한국의 사정도 우려스럽다.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저임금 서비스산업과 임시·일용직 중심으로 1년 전에 비해 취업자가 47만6천명 감소했고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는 일시휴직자도 113만명 증가했다. 이는 하위계층의 근로소득 감소로 이어졌지만, 고소득층의 소득은 오히려 증가했다.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상위 10% 가구의 소득은 전년에 비해 7% 증가했고 하위 10% 가구는 3.6% 감소했다. 재난으로 인한 고통은 아래로만 흘러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 빈곤층에 집중되고 있다.

다른 전염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의 실증연구는 사스 등 2000년대 들어 5개의 전염병 이후 소득불평등이 심화되었고 특히 교육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사라진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된다면 불평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한 연구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기술과 고숙련 노동자들을 더 많이 사용하도록 촉진했다고 보고한다. 특히 불황기에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호황기에 해고당한 이들에 비해 소득의 회복이 더욱 어렵다. 또한 재난 자본주의라 불리듯 흔히 재난은 기득권층의 이해와 대자본의 돈벌이를 위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재난 이후의 불평등은 그에 맞서 싸우는 정치에 달려 있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고용보험, 유급병가 그리고 복지지출 확대와 고소득층 증세 등의 정책을 제시한다. 이제 여러 국가들이 불평등을 드러내고 있는 재난 앞에서 일자리를 지키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더 나아가 현실을 바꾸기 위한 구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여전히 모자라는 정부의 소득재분배를 확대하는 것과 함께 노동환경과 처우의 개선을 위해 취약한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동조합 결성을 촉진하고 단체협약 적용률을 확대하며 공정한 임금체계를 실현해야 한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지만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 평등한 공동체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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