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밝혀내야 할 언론과 검찰 모두 휴대폰만 확보하면 금방 드러날 ‘진실’이 두려워 뻔한 지름길을 두고 애먼 길을 빙빙 돌았다.
이들이 감추려 했던 ‘검사장’의 행적은 기자와 후배 기자의 통화녹취록, 또다른 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도 국민한테 위임받은 적 없는 ‘사이비 권력’들이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진실을 파묻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김이택 ㅣ 대기자
진실을 드러내는 건 힘겨운 싸움이다. 힘 있는 자들은 법을 앞세우고 제도의 틈을 파고들어 쉽게 감춘다. 그러나 감추려는 ‘권력’자들 못지않게 ‘진실’ 역시 힘이 세다. 감춘다고 해서 흔적까지 말끔하게 지울 수는 없다.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A) 사건’에서도 권력자들은 진실을 감추려 부단히 애썼으나 흔적까지 없애진 못한 것 같다. 이아무개 기자가 수감 중인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전 대표를 회유하려 보냈다는 편지에 이미 이 사건의 ‘전모’가 들어 있다. 검찰에 말해 가족들의 선처를 위해 힘써줄 테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유력 인사들 비리를 넘겨달라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기자가 상대를 너무 쉽게 봤던 것 같다. 이씨 대리인으로 나선 지아무개씨의 호주머니까지 뒤졌지만 녹음을 막진 못했다. <채널에이> 보도본부장이 카카오톡 문자에 남겼듯이 지씨의 ‘이중플레이’에 ‘녹아났다’.
지난달 21일 채널에이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편지나 지씨와의 대화 및 통화 녹취록뿐 아니라 채널에이 ‘보고서’와 두 대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밝힌 속기록에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들은 많다.
지씨가 대화를 몰래 녹음해 <문화방송>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날(3월23일) 아침 채널에이 보도본부 수뇌부는 가장 먼저 외부인, 그것도 ‘검언 유착’ 의혹의 당사자로 주목받는 ‘검사장’에게 연락하도록 했다. 오전 10시 검사장에게 전화해 전달한 내용도 “녹음파일은 없다”였다(보고서 46쪽). 문화방송 보도 8일 전이다. ‘그 일주일(3월23∼31일) 동안 누구도 검사장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한 사람이 없었고’(보고서 42쪽), 결국 기자는 문화방송 보도(31일) 직후 휴대폰 2대를 초기화하고 노트북피시를 윈도10으로 업그레이드해 흔적을 지웠다. 채널에이는 보도 다음날에야 진상조사위를 띄웠다. 그사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굳이 따질 필요까진 없겠다.
방송통신위 의견청취 과정에서도 채널에이 두 대표가 극구 감추려 했던 것은 ‘검사장’의 존재였다. 속기록을 보면 이 기자가 통화한 상대가 ‘검사장’ 맞느냐는 위원들의 거듭된 추궁에 결국 고개를 끄덕여 시인했다. 그러나 의견청취가 끝나 퇴장했던 두 대표는 다시 정정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시간 관계로 거절당한 뒤 채널에이 대표 명의로 낸 ‘의견 제출’ 서면의 요지도 결국 ‘검사장인지 확인되지 않았다’였다.
그러나 이들이 극구 감추려 했던 검사장의 행적은 미처 없애지 못한 이 기자와 후배 기자의 통화녹취록과 지씨에게 읽어줬다는 통화녹취록에 고스란히 담겼다. 검사장이 ‘수사팀에 얘기해줄 수도 있으니 만나보고 나에게 알려달라. 나를 팔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두 녹취록 내용이 거의 일치하니 조작이라 보기도 어렵다.
그 ‘검사장’이 바로 핵심 측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윤석열 검찰총장의 움직임은 이례적으로 굼떴다. 4월7일 문자로 감찰 착수 의사를 밝혀온 대검 감찰본부장을 제지했다. 이틀간 휴가를 마치고 8일 출근한 뒤엔 굳이 대검 인권부에 조사를 맡겼다. 결국 감찰본부는 ‘검사장’ 휴대폰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민언련의 고발장이 접수된 지 10일 만인 17일에야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지시했다. 문화방송 보도 이후 무려 17일 만이다. 물증을 없애고 진실을 묻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이미 기자 휴대폰의 흔적은 삭제된 뒤였지만…. 수사 착수 뒤에도 ‘균형 수사’를 공개 지시해 적극 수사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이례적 행보가 오히려 검찰 안팎에 ‘측근 관련설’의 심증을 굳혀주었다.
‘종편’ 보유 언론들도 거들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편지와 녹취록에 나오는 ‘검언 유착’ 대신 ‘친여 브로커’라며 지씨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다. ‘여권의 윤석열 때리기’ 프레임으로 사건의 본말을 뒤집으려 했다.
‘진실’ 규명을 사명으로 하는 언론과 검찰 모두 기자와 검사장의 휴대폰만 확보하면 금방 드러날 ‘진실’이 두려워 뻔한 지름길을 두고 애먼 길을 빙빙 돌았다. 국민한테 위임받은 적 없는 ‘사이비 권력’들이 이렇게 권한을 남용하고 야합했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진실을 파묻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검찰이 끝내 진실을 덮는다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나설 수밖에 없다. 채널에이나 <티브이조선>에 대해서도 재허가 최종심판을 앞둔 방통위 책임이 무겁다.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