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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법사위는 ‘상원’이 아니다 / 신승근

등록 2020-06-11 19:04수정 2020-06-12 10:07

2019년 9월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이 야당 소속 여상규 위원장의 발언에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9년 9월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이 야당 소속 여상규 위원장의 발언에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말뿐이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은 ‘오만 경계령’을 내렸고, 문재인 대통령은 협치를 강조했다.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준엄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혁신하고 달라지겠다고 무릎 꿇었다. 실천은 없다. ‘법대로’를 윽박지르고, 배 째라는 식으로 버틴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두고 치킨게임이 한창이다. 통합당은 관례대로 야당 몫을 요구한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 상원처럼 군림해온 게 국회가 지킬 전통은 아니다”라며 “시급히 없애야 할 폐습”이라고 맞섰다. 아무리 입장이 바뀌었다 해도 ‘폐습’은 지나친 비난이다.

2008년 4월 18대 총선 직후로 시간을 돌려보자. 당시 통합민주당은 ‘괴멸적 패배’를 경험했다. 한나라당 153석, 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을 얻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정권을 내준 뒤 연이은 패배에 위기감은 높아졌다. 원구성 협상에 나선 원혜영 원내대표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상대로 “관례대로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양보하라”고 맞서며 88일 동안 버텼다. 한나라당은 결국 18대 국회 법사위원장을 유선호 민주당 의원에게 내줬다. 노영민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 “야당 몫의 상임위원장까지 독식해서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이냐”고 비난했다.

‘야당 법사위원장’은 무작정 비난만 할 수 없는 관례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현실화하자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야당 법사위원장’을 처음 주장했다. 그전까진 여당 몫이었다. 결국 1998년 15대 국회 하반기 법사위원장은 목요상 한나라당 의원이 맡았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7명의 법사위원장을 모두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18대, 19대 국회에선 여당이 ‘낡은 관례 타파’를 외쳤다. 그러나 “일방 독주를 못 하게 하는 길목이고, 관행대로 야당 몫”이라는 민주당의 요구에 번번이 물러섰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민주당의 현재 모습이다. 여당 몫 법사위원장이 절실한 이유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11년 펴낸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의 개혁 실패를 회고하면서 “개혁 입법이 중요한 시기에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넘겨준 국회 원구성 협상이 잘못”이라고 밝혔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어떤 정부도 돌이킬 수 없는 성과를 내고 싶을 것이다.

법사위의 고질도 무시할 수 없다.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은 1951년 제2대 국회 때 도입됐다. 당시 법안을 낸 무소속 엄상섭 의원은 법률안의 통일성을 높여 “본회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본말이 전도됐다. 다른 상임위가 격론을 벌이고 숙고해 처리한 법안을 법사위가 붙들고 시간만 때우다 폐기하기 일쑤였다. 법안 내용 자체를 고치는 월권도 빈번했다. 20대 국회에서 법사위에 올라온 다른 상임위 통과 법안 가운데 무려 91건이 폐기됐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장악했던 18·19대 국회에서도 218건을 폐기했다. 민주당, 통합당 모두 남 탓할 처지가 아니다.

21대 국회 법사위원장이 어떻게 결론 나든,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고 ‘상원 노릇’하는 행태를 멈추지 않는 한 원구성 때마다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해소하는 게 옳다. 해법은 간단하다. 여야가 낸 법안대로 하면 된다. 19대 국회에선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20대 국회에선 거꾸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체계·자구 심사권은 각 상임위원회의 법안 축조심사 과정에서 행사하도록 하거나, 미국처럼 의회 안에 법제지원기구를 만들어 필요할 때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을 돌아보고 역지사지해야 한다. 통합당은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국회법 절차에 따른 패스트트랙마저 가로막는 행태에 국민은 분노했고, 심판했다. 표결에서 밀릴 테니 법사위원장을 깔고 앉아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타협하고 국회를 조속히 정상화해야 한다. 최소한 민주당의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에 동의한 뒤 법사위원장을 달라고 해야 마땅하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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