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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김경락

등록 2020-06-23 17:39수정 2020-06-24 09:37

김경락 ㅣ 산업팀장

10여분 따가운 햇볕을 마주하며 걸은 뒤 지하철에 올라타면 콧잔등과 입가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객실에 빼곡히 들어찬 출근길 승객을 보며 행동에 옮기지는 못하지만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두세달 전만 해도 무엇보다 소중하던 마스크가 이젠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다가온다.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감염에 대한 경계심이 한껏 느슨해진 심사이다.

마음을 다잡게 된 건 지난 19일치 <한겨레> 사회정책팀의 보도를 보면서다. 이달 들어 심상찮은 수도권 신규 확진자 수 추이를 전하며 매일 100명씩 확진자가 나올 경우 공공병원 병상이 10일도 채 되지 않아 동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5월 초 정부가 방역지침을 완화한 뒤 일부 연구자나 의료진을 중심으로 2차 파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주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병상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경고만큼은 흘려듣기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정부는 ‘코로나 이후’(포스트 코로나)를 말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나타난 사회 경제적 변화에 발맞춰 경제 구조를 바꾸고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4월께 알고 지내는 경제 관료들은 “코로나 국면은 재정으로 메우면 되기에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그 이후”라며 “미리 준비하고 틀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구상은 ‘디지털 뉴딜’ ‘한국판 뉴딜’이란 표현으로 등장했고 이달 초에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구체화했다.

정부가 코로나 이후를 고민하게 된 자신감의 원천은 이른바 ‘케이(K) 방역의 성공’이라는 판단과 비교적 빠른 속도로 회복된 소비 및 자산가격 지표에 있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의 올해 경제 전망에서 한국이 비교 대상 주요국 중 코로나19 충격이 가장 덜한 나라로 분류된 것도 당국의 태세 전환에 명분을 준 듯도 싶다.

정부의 태세 전환이 한창일 때 나온 ‘병상 부족 경고’ 보도는 두달 전 접한 한 경제 석학의 짧은 보고서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 3월 피에르올리비에 구랭샤 교수(UC버클리대·경제학)가 쓴 ‘막을 수 없다면 억제와 둔화를 택하라’란 제목의 글이다. 이 보고서는 두 개의 명제를 제시한다. ①거리두기 등 공중보건 대책 강화 수준과 경제적 손실은 비례 관계를 갖는다. ②공중보건 대책의 강도는 의료 체계 수용력을 가장 고려해야 한다. 두 명제를 종합하면, 의료 체계 수용력이 임계치에 이르기 전에 공중보건 대책을 강화해야 하며,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구랭샤 교수는 “경기 침체를 회피하는 데 정책의 중점을 두면 감염 대확산이란 부작용이 발생한다. 개별적으로 합리적인 조처가 집합적으로는 유해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지난 2월 말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지 못하는 감염병 위기’란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보다 두 배 많은 재정 대책(1차 추가경정예산)을 준비하고 있다며 ‘적극 대응’을 홍보할 때였다. 이 칼럼에 바이러스의 속성이 미스터리인 터에, 정부·여당의 상황 판단이 성급하고 안이해 보인다는 주장을 담았다. 실제 그 뒤 무증상 감염이나 완치자의 재감염이라는 특이 속성이 드러났다. 확진자 수는 급증했으며, 그제야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과 대형 경제 대책이 나왔다.

일반인들보다 멀리 보고 준비해야 하는 정부가 ‘코로나 이후’를 내다보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후 대책’에 골몰하다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경제 대응을 놓치거나 행여라도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방역 대책을 느슨하게 가져가서는 안 될 일이다. 코로나19라는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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