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비서실장이 문제의 ‘반포 아파트’를 팔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총리는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의 주택 처분을 지시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의 다주택 매각 서약 이행을 앞당기겠다고 했다.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매각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만, 지난 3년 동안 뭐 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실련 회원들이 지난 1일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청와대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의 주택 처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문제의 ‘반포 아파트’를 이달 안에 팔겠다고 밝혔다. 노 실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각 부처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 고위공직자 주택 보유 실태를 조속히 파악하고, 다주택자는 하루빨리 매각할 수 있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지시했다. 정 총리의 지시에 따라 정부는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현황 파악 등 후속 조처에 착수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애초 2년 내 다주택 보유 의원들의 주택 처분을 약속했지만, 솔선수범 취지에서 이른 시일 안에 이행해줄 것을 당 차원에서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매각이 급물살을 타는 모양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만, 지난 3년 동안 뭐 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6월23일 취임식에서 서울 강남 4구의 다주택자들이 아파트를 싹쓸이하는 실태를 파워포인트로 보여주면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며 “돈을 위해 주택 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해 ‘8·2 대책’을 발표하면서는 “이번 대책의 특징은 집 많이 가진 사람이 불편하게 된다는 것”이라며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시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김 장관은 “이런 정책 방향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공표됐으면 고위공직자들이 솔선수범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다주택을 처분한 고위공직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장관 등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불신의 늪’에 빠졌다. 최근 경실련과 참여연대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다주택 보유 실태가 치명적이었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다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배신감을 국민들에게 안겨줬다. 정부가 집값을 잡을 능력은 둘째 치고 아예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21번의 대책에도 집값을 잡지 못한 데 대한 실망이 분노로 바뀌었다.
정부와 민주당이 연일 회의를 열어 추가 부동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20대 국회에서 자신들이 무산시킨 ‘12·16 대책’의 종합부동세법 개정안보다 더 강력한 개정안을 곧 발의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닥까지 추락한 부동산 정책의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국민이 믿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청와대 참모도 따르지 않는 정책을 어느 누가 믿겠는가. 청와대 참모들은 노영민 실장의 뒤를 따라야 한다. 정세균 총리의 지시도 차질 없이 집행되어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이번만큼은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22번째 집값 대책을 내놓기에 앞서,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이 살지 않는 집을 실제로 파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일부에선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을 다 합쳐봐야 몇 채나 된다고 집값 안정에 효과가 있겠느냐는 얘기를 한다. 그렇지 않다. 고위공직자들이 집을 판다고 당장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부동산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그 어느 대책보다도 강력하다. 시장은 알고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왜 다주택을 처분하지 않는지. 시장은 묻는다. 고위공직자들이 집을 여러 채 갖고 있는데 정부가 무슨 수로 집값을 잡겠느냐고.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처분은 시장의 이런 의문에 답이 될 수 있다. 일반 다주택자들도 이젠 집을 팔 때가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24%)보다 다주택자 비율이 더 높은 미래통합당(40%)도 동참하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처럼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반대할 게 아니다. “우리 당의 다주택 의원도 집을 팔자”는 원희룡 제주지사의 제안을 따라야 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주택 소유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서울의 다주택자가 38만9천명이고 이들이 보유한 주택이 96만8천채다. 다주택자들이 살지 않는 집을 모두 판다고 가정하면 약 60만채가 새로 공급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최근 3년간 서울의 한해 아파트 입주 물량이 4만~5만채다. 10년치가 넘는 물량이 공급되는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의 다주택 처분이 부동산 정책의 불신을 걷어내는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안재승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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