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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귀결 / 이원재

등록 2020-07-14 15:08수정 2020-07-15 11:13

경기도 고양시 한 정육점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알림글이 붙어 있다. 한겨레 장철규 선임기자
경기도 고양시 한 정육점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알림글이 붙어 있다. 한겨레 장철규 선임기자

이원재 ㅣ LAB2050 대표

정부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코로나19 사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의료전문가 상당수는 지금이 긴 겨울의 시작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4년 동안 고용이 코로나19 이전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방역 관점에서도 경제 관점에서도, 반등을 기대하며 기회를 찾기보다는 어떻게 버틸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시기다. 일부에서 외치듯 혁신과 전환이 필요하더라도, 버티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난 5월11일부터 4인 가족 100만원까지 코로나19 대책으로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그런 면에서 중요한 힌트를 준다. 재난지원금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지급된 소득이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지급된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소득이면서, 지역화폐로 지급되었으며 4개월 만에 소멸하게 설계되었다.

최근 발표된 공식 통계들로부터 효과의 단편들이 드러난다. 종합하면 서비스업, 특히 음식점업과 숙박업 같은 영역에 활력을 준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니, 서비스업 전체가 4월보다 2.3% 나아졌다. 음식점, 숙박업소, 이미용업소, 안경점 등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5월 소매판매액은 코로나19 이전인 전년 같은 달보다도 늘었다. 일시적이나마 소비 회복세에 재난지원금이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숫자를 좀 더 들여다보면 계층별 특징도 보인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동차를 샀다. 여유가 없으나 꾸준히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고기를 사다 먹었다. 소득이 줄어들어 어렵던 사람들은 음식점과 미용실에 가서 썼다.

소비가 늘자 물가 하락세도 멎었다. 6월 물가는 2019년 같은 달과 같은 수준이다.

지속적이고 전반적인 물가 하락을 디플레이션이라 한다. 장기불황의 신호로 여겨진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우리에게는 장기불황의 공포가 있었다. 공포는 디플레이션이라는 옷을 입고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2019년 8월,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바로 전달보다 하락했다. 다음달인 9월, 소비자물가는 사상 처음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하락했다. 그 뒤 몇달 간신히 회복했다가, 코로나19 이후인 2020년 5월 다시 전해보다 떨어진 수치를 기록했다. 이렇게 몇차례 반복하다가,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디플레이션은 폭우로 댐이 무너지는 위기가 아니다. 가랑비로 옷이 젖던 끝에 결국 시름시름 앓게 되는, 느리고 무기력한 위기다. 이런 무기력에는 백약이 무효다. 일본이 수십년 겪었던 불황도 디플레이션과 함께 왔었다. 대규모 토건사업을 벌여도 지역 살리기에 나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이 되고, 이제 언제 되찾을지 모르는 시절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재난지원금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잠시 보여준 것이다. 소비심리를 깨웠고, 속절없이 추락하던 내수 서비스업에 낙하산을 제공했다.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수출 제조업 중심 구조를 강화해 왔다. 그런데 지난 30년 동안 제조업은 부가가치를 7배가량 늘리면서 급성장했지만, 고용은 거의 늘리지 않았다. 전세계에 불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바람 탓에 수출의 불확실성은 커졌다. 제조업 자동화로 고용 없는 성장이 심화되고 있는데, 성장마저도 없다면 고용은 더 어려워진다.

대안은 서비스업일 수밖에 없다. 병원과 교육사업에서부터 음식점과 미용실과 빵집까지도 더 품질이 좋아지고 매출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제 고용은 이런 부문에서 나온다. 그런데 소비를 통해 흘러들어갈 소득이 줄면 물가가 하락하고 사업자들이 투자할 유인도 사라진다. 품질이 하락하고 사업이 쇠락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돈이 흘러들어가는 길을 뚫어줘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3차 추가경정예산을 내놓으면서 ‘위기 극복으로 성장을 견인하고, 성장의 과실을 통해 세수 증대를 이룰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과실이 내수 부문, 서비스 부문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면, 이 공식은 국민의 대다수에게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국민에 대한 조건 없는 소득분배가 과실을 흐르게 하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결과들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경제 상황을 지켜보면서, 다음 재난지원금을 집행할 수 있게 준비해 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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