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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발] 귀신 잡는 해병이 ‘헤엄 월북’ 못 잡은 이유 / 권혁철

등록 2020-07-30 15:20수정 2020-07-31 02:41

27일 인천시 강화군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모습. 군 당국은 탈북민 김씨가 지난 18일 새벽 접경지역인 인천 강화도의 한 철책 밑의 배수로를 통과해 한강을 헤엄쳐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강화/연합뉴스
27일 인천시 강화군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모습. 군 당국은 탈북민 김씨가 지난 18일 새벽 접경지역인 인천 강화도의 한 철책 밑의 배수로를 통과해 한강을 헤엄쳐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강화/연합뉴스

군의 경계 실패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6월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지난 3월 민간인들의 군 부대 침입, 지난 5월 충남 태안 중국인 밀입국에 이어 탈북민의 ‘헤엄 월북’이 벌어졌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귀신 잡는 해병도 월북자는 잡을 수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태 의원은 지난 2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탈북민이 헤엄 월북한) 강화도 월곶진 일대는 대한민국 최정예 병력이라는 해병대 관할 지역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군의 경계 태세가 얼마나 느슨해졌는가에 대한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신원식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국방위 질의를 통해 “경계 작전의 실패는 장병의 성실성, 다시 말해서 정신전력이 해이됐다는 소리”라고 말했다. 신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9·19 군사합의 등의 깜짝쇼와 대적관 해체로 장병의 정신 무장이 이완되니 경계 작전 태세가 해이해진 것”이라며, 잘못된 안보정책이 경계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처럼 정신무장을 튼튼하게 하면 ‘물 샐 틈 없는 철통 경계’가 이뤄지는 것일까.

입길에 오르는 경계 실패 사례들을 살펴보자. 2012년 10월 북한군이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 우리쪽 감시초소(GP) 창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밝혔다. 노크 귀순은 이명박 정부 때였다. 2015년 6월 북한군이 중동부 전선 비무장지대 우리 군 감시초소 인근에서 하루를 대기했다가 날이 밝자 귀순했다. 대기 귀순은 박근혜 정부 때였다.

2013년 8월22일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상황실을 방문해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를 강조했다. 이 지시가 무색하게 다음날 새벽 북한 주민이 헤엄쳐 교동도 민가에 도착해 잠자던 집 주인을 깨워 “북에서 왔다”고 귀순 의사를 밝혔다. 한미연합훈련 기간에 대북 경계망이 뚫렸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0~2016년 <국방백서>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적시했다. 우리 군의 확고한 대적관을 표명하기 위해서였다. 일부 부대에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진을 표적으로 삼아 사격 훈련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대적관 확립과 정신무장을 강조했지만, 경계 실패는 끊이지 않았다. 정신 무장과 경계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봐야 한다. 헤엄 월북을 정신무장 해제가 빚은 경계 실패로 단정하긴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 왜 귀신 잡는 해병이 월북자를 못 잡은 것일까. 병력은 적고 지켜할 곳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해병대 제2사단은 북한과 마주보는 강화도, 교동도, 우도에는 전 해안에 경계병력을 배치하고, 한강하구 전체도 경계한다. 이 부대의 경계책임지역이 255㎞로, 휴전선(250㎞)보다 길다. 육군 11개 사단이 휴전선 250㎞를 지킨다. 해병대 1개 사단이 수도권 서측방(김포·강화) 255㎞를 책임지고 있다. 단골 귀순 루트인 교동도는 해안선 길이가 37.5㎞이다. 같은 길이의 휴전선은 육군 1.5개 사단이 지킨다. 교동도는 해병 200명이 지킨다. 해병은 어벤저스가 아니다. ‘귀신 잡는 해병이 왜 월북자를 못 잡느냐’고 힐난하기 전에 ‘물샐틈없는 경계’란 물음의 전제가 현실적인지 살펴봤으면 좋겠다. 군 수뇌부도 “개미 한 마리 얼씬 하지 못하도록 철통경계하겠다”는 허세를 접고, 현실을 솔직하게 설명해야 한다.

헤엄 탈북으로 군에 대한 믿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군은 백번을 지적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방부는 이번 일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하지만 헤엄 월북을 계기로 월북 감시 장비·병력을 크게 늘리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해병대 제2사단의 해안경계작전 임무는 △북한군 침투 탐지·저지 △북한 귀순자 포착이다. 이때문에 이 지역 경계작전시스템은 북쪽 방향에 맞춰져 있다. 민간인 월북 감시·차단을 주요 임무로 추가하려면 남쪽 방향으로 감시장비를 더 설치하거나 북쪽으로 배치된 기존 감시장비를 남쪽으로 돌려야 한다. 감시 병력도 추가배치해야 한다. 다른 곳에 쓸 예산과 병력을 끌고와야 한다. 월북 탐지·차단이 그만큼 우선 순위가 높은 안보 위협일까. 해안경계작전의 가장 큰 목적은 북한군 침투 조기 발견이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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