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환|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11월23일 오후 홍콩 지하철 아일랜드선 홍콩대학역에 내려섰다. 학교로 직접 연결되는 출구는 봉쇄된 채였다. 홍콩이공대 점거 시위가 불을 뿜으면서, 각 대학에서 이뤄진 연대 시위가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지하철역을 에둘러 빠져나와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교정 들머리에는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배치돼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저만치서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베니 타이(56) 홍콩대 법대 교수다.
타이 교수는 홍콩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이론가이자 활동가로 통한다. 헌법 등 공법 전공자인 그는 2014년 홍콩 정부 수반인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지속된 ‘우산혁명’의 최초 주창자이기도 하다. 그는 뒤늦게 ‘공공소란죄’ 등으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4월 1심에서 징역 1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8월에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였다.
그가 ‘교수 신분증’을 꺼내 보이고 나서야 학교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한적한 교정의 벤치에 마주 앉아 근황을 묻자, 그는 “이번 학기엔 수업이 없어 요리 등 집안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생겼다”며 맑게 웃었다.
“우산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홍콩 사회는 절반의 민주주의를 구가했다. 하지만 우산혁명 이후 절반의 권위주의 체제로 바뀌었다가, 송환법 반대 시위 국면에선 아예 경찰이 사회를 통제하는 총체적 권위주의 체제가 돼가고 있다.”
모든 저항이 변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2014년 우산혁명이 실패로 끝난 뒤 홍콩 시민사회는 한동안 침묵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6월 송환법 반대 시위의 열기를 시민사회 활동가들조차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6개월을 끌어온 홍콩 시민의 저항운동은 이튿날인 11월24일 지방선거(구의회) 결과로 이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돌아본 투표소마다 유권자들이 기다랗게 줄을 서 있었다. 최종 집계된 투표율은 71.23%, 홍콩에서 치러진 역대 선거를 통틀어 최고 기록이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줄곧 소수파였던 범민주 진영은 전체 452석 가운데 385석을 얻었다. 전체 18개 구의회 가운데 17개를 민주파가 장악했다. 선거 결과에 대해 묻자 타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선거 전에 최대치로 투표율 60%에 300석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나치게 낙관적이란 소릴 자주 듣는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 구의회는 법적으로 자문기구에 불과하지만, 풀뿌리 공동체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반으로 삼을 수 있다. 홍콩 전역에 범민주 진영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면 대정부 협상력도 높아질 것이고, 장기적으로 홍콩을 더욱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승리의 기억’을 공유하는 세대가 등장했음을 기뻐했다. 모든 저항이 변화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어떤 저항은 실제 현실을 바꿔낸다는 점을 경험한 세대 말이다. 이 무렵부터 그는 2020년 9월 입법회 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방선거에 이어 입법회까지 민주파가 장악하면, 우산혁명이 실패했던 행정장관 직선제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난 28일 홍콩대 당국이 타이 교수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이 빌미였다. ‘홍콩판 국가보안법’ 시행 한달 남짓 만의 일이다. 그는 1990년부터 이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다. 타이 교수는 페이스북에 “홍콩의 법치를 위한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자유로운 홍콩의 재탄생을 보게 되리라 확신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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