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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착한 전월세 정책의 역설’ 피하려면

등록 2020-08-02 16:28수정 2020-08-03 02:39

김수헌 ㅣ 경제팀장

미래통합당 신예 경제통으로 꼽히는 윤희숙 의원이 주말 내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달 30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그가 한 ‘5분 자유발언’ 때문이다.

임차인에게 한 차례 계약갱신 권리를 줘 전월세 기간 4년을 보장하고, 계약갱신 때 전월세 인상률을 최대 5%로 제한하는 내용의 이 법안을 두고 윤 의원은 이렇게 비판했다. “임대인에게 세 놓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순간, 시장은 붕괴한다.”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멘트로 말문을 연 윤 의원은 새 임대차 제도가 미칠 파장과 법안 통과 과정에서의 절차상 문제점을 부각했다. 과장과 비현실적 가정이 엿보이는 발언이지만, 여당의 ‘입법 속도전’에 불안감을 느낀 네티즌들에겐 나름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미국 명문대 경제학 박사로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경제 전문가라는 후광 효과도 한몫한 것 같다.

실망스러운 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다. 임대인 절대 우위였던 임대차 시장에서 임차인의 권리를 찾고, 전월셋값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에서 통과시킨 법안이 아니던가. 논리와 팩트로 당당하게 논쟁에 나서 여론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터인데 똑 떨어지는 반응이 없다. 고작 발 빠르게 나온 반격이 박범계 민주당 의원의 에스엔에스(SNS) 글인데,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비꼬다가 되레 내로남불·지역폄하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윤 의원이 주장한 핵심 메시지는 임대차법 개정으로 전세가 월세로 빠르게 바뀌고, 심지어 임대인이 세를 놓지 않고 시장에서 나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반박의 여지가 크다. 다주택자인 전세 임대인은 대체로 전세금을 주택 구매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강남3구를 비롯한 서울 주요 지역 주택 거래의 70%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라는 통계도 있다. 전세보증금이 주택 구매자금으로 묶여 있는데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여유가 있는 경우라면 임대차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지금 같은 초저금리 상황에서 전세를 유지할 이유가 있겠는가.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이나 월세라는 기대이익을 포기하고 세를 놓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집을 팔고 임대시장을 떠날 수는 있겠는데, 이 경우엔 매매 물건이 늘어나 집값 안정의 효과를 볼 수 있지 않나. 전월세 인상률 제한은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다주택자가 임대료를 마음대로 못 올리게 되면 임차인에게 보유세 부담을 떠넘길 여지가 줄어, 다주택자의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택임대차법 개정안은 법률로 임대료의 인상률을 제한한 것이다. 정부가 시장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셈이다. 경제학 교과서의 논리를 따르자면, 정부의 가격 통제는 시장 왜곡을 불러온다고 한다.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높인 새 임대차 제도가 예상치 못했거나 간과했던 부작용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세심히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개정안은 면밀한 토론 없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지 사흘 만에 국회 통과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까지 속전속결로 처리된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기존 세입자로선 최근 전셋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새 제도 덕분에 큰 부담 없이 전세 연장을 할 수 있게 됐다. 반면 새로 전월세를 구해야 하는 이들은 크게 오른 임대료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처지다. 기존 세입자라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전세금이 한꺼번에 오를 수도 있어서다. 세입자 입장에선 ‘조삼모사’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정부가 시장 가격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니, 좀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개입해 이런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약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도입했지만 되레 그들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착한 정책의 역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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