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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여전히 문제는 ‘검·언 유착’이다

등록 2020-08-03 17:42수정 2020-08-04 02:10

김이택 ㅣ 대기자

<채널에이(A)> 사건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검찰총장이 대놓고 수사를 방해하더니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 권고에 이어 사상 초유의 검사들 ‘육박전’까지 터져나오면서 ‘진실’ 실종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진실’은 원래 산처럼 흔들림이 없다. 2월13일 부산고검 차장실 대화록, 감옥으로 보내진 4통의 편지, 채널에이 기자들 사이의 통화록, 제보자와 채널에이 기자의 대화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산꼭대기 오른 듯이 ‘진실’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검·언 유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2·13 대화록 앞부분 한동훈 검사장의 “유시민에 관심 없어” 발언에 주목한다. 그러나 나중엔 ‘유시민 (혐의) 찾아다닌다’는 기자에게 “그건 해볼 만하지”라고 화답하고 ‘교도소에 편지도 썼다’는 말엔 “그런 거 하다 한건 걸리면 되지”라고 관심 표명도 했다.

더 눈길 끄는 건 한달 뒤 채널에이 기자들 사이의 통화록이다. 채널에이 스스로 공개한 보고서엔 후배 백아무개 기자 휴대폰에 녹음된 이동재 기자와의 통화 내용이 나온다. “… 내가 아침에 전화를 했어. … ○○○(한동훈)이 ‘야 만나봐’ … ‘나는 나대로 어떻게 할 수가 있으니깐 만나 봐. 수사팀에 말해줄 수도 있고’ 그러는 거야… ‘나를 팔아’ 막 이러는 거야.”(3월10일치) “내가 ○○○한테는 아예 얘기를 해놨어. … ×××(제보자)이 자꾸 검찰하고 다리 놔달라고 한다고 그랬더니 ‘그래? 그러면 내가 놔줄게’ 그러는 거야. ‘아니다. 나보다는 ○○이 하는 게 낫겠다. …’ 이러는 거야.”(3월20일치)

이 기자가 3월22일 제보자 지아무개씨에게 보여준 대화록 속 ‘검사장’의 말도 비슷하다. “얘기 들어봐. 그리고 다시 나한테 알려줘. 수사팀에 그런 입장을 전달해줄 수는 있어.” 이 기자는 <조선일보> 인터뷰(7월2일치)에서 이 대화록을 창작인 것처럼 말했으나 후배 기자한테까지 거짓말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다 나보다는 ○○이 하는 게 낫겠다’는 말은 꾸며내기도 어렵다.

한동훈 검사장이 7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언 유착' 사건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검사장이 7월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언 유착' 사건 수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화대로 실행된 듯한 흔적도 있다. 3월10일 검사장이 이 기자와 한 통화에서 ‘나는 나대로 어떻게 할 수가 있다’고 한 지 이틀 만인 3월12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부가 수감 중인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를 불러 조사했다. 이미 형이 확정된 그에게 자기 사건과 무관한 법인계좌 송금내역 등을 캐물었다고 한다.(<문화방송> 서면 인터뷰)

이 기자는 휴대폰 내용 지우고, 회사는 “녹음파일 없다”고 검사장과 말 맞춘 듯한 상황까지 종합하면 누가 봐도 ‘검언 유착’이다. 판사도 그래서 이 기자 구속영장을 발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채널에이 기자들 통화는 ‘전언 형식’이라 법적으론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게 결정적 약점.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 검사장이 이 틈을 노렸다. 끝까지 휴대폰 비번 사수하는 것도 이 증거를 내주지 않으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부장검사와의 몸싸움을 ‘폭행’ ‘불법감청’ 이슈로 키워 반격하는 등 기세등등하다. 사건 전모가 드러나기 전부터 이미 ‘윤석열 때리기’라던 보수언론들이 그를 편들어주면서 사건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그러나 ‘폭행’ ‘감청’ 논란은 그것대로 시시비비를 가려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것 때문에 ‘유착’이 없던 일이 될 수도 없다.

이 사건이 심각한 건 수사권을 호주머니 공깃돌처럼 맘대로 휘두르며 ‘썩어도 준치’로 착각하는 검찰권력과, 맘에 들지 않는 유력인사 거꾸러뜨리려면 수감자 협박해도 된다는 ‘권력 코스프레’ 거대언론이 저지른 초유의 엽기적 공모, ‘유착’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언론이라면 증거가 말하는 ‘진실’ 앞에선 겸허해야 한다. 온 국민이 다 본 증거들을 애써 무시하며 사건의 본말을 뒤집는 건 분명 ‘왜곡보도’다.

일부 언론의 이런 태도엔 정부 여당 책임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4월 ‘검언 유착’ 사건 의견청취 뒤 ‘채널에이 대표자 진술이 사실과 다르거나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에 영향 미치는 중대한 문제가 확인될 경우’ 재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회사가 개입했는지 파악되면…”이라고 방통위원장 말이 살짝 바뀌었다. <티브이조선> 역시 공정성 분야에서 과락 점수를 받아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이후 코로나19 오보 등으로 법정 제재가 추가돼 재승인이 위태롭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난달 초선 의원 ‘미디어교육’ 한다며 티브이조선 시사제작국장을 불러 ‘정치인의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들었다. 소통하겠다는 취지는 알겠으나 방통위 재승인 심사가 남아 있는데 적절했을까. 그러니 대놓고 ‘검언 유착’ 해도 단죄 못 하는 거 아닌가.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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