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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즈모폴리턴] 미·중의 적대 관계와 공모 관계 / 신기섭

등록 2020-08-06 17:44수정 2020-08-07 02:09

신기섭 ㅣ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에서 출발해 세계적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떠오른 ‘틱톡’이 최근 미국 내 사업 매각을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공개 협상에 착수했다. 매각 결정은 틱톡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기 때문에 서비스를 금지시키겠다는 미 정부의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내린 결정이다.

틱톡 사태로 극명하게 드러난 미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두 나라 경제의 상호 의존관계를 생각하면 ‘자기파괴’ 수준이다. 두 나라 경제 관계를 상징하는 기업 중 하나가 ‘애플’이다. 애플은 최근의 경기 침체를 비웃듯, 지난달 30일 양호한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중국의 대규모 아이폰 생산 공장을 바탕으로 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애플이 상징하는 긍정적 협력과 대조되는 관계도 있다. 2017년 나온 다큐멘터리 영화 <차이나 허슬: 거대한 사기>는 미 금융계와 중국 기업의 합법적이지만 추악한 공모를 다룬다. 공모가 본격 시작된 때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다. 투자처 발굴이 절실했던 미 금융계는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 기업들을 미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투자 수익을 얻자는 것이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었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회계감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껍데기만 남은 미국 상장 기업을 인수해 ‘우회 상장’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월스트리트가 쓰레기를 금으로 포장할 방법을 찾아냈다”고 묘사했다.

이 일에 앞장선 기업은 작은 투자은행들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로즈캐피털은 투자자들을 초청해 며칠 동안 화려한 쇼 공연과 파티를 베풀면서 100~150개에 달하는 중국 회사를 홍보했다. 뉴욕의 투자은행 로드먼앤렌쇼는 거물 정치인들을 이용했다. 2003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군인 출신의 웨슬리 클라크를 회장으로 영입했고, 헨리 키신저 같은 이들을 강연을 곁들인 파티에 내세워 투자자를 확보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우회 상장된 기업들을 좋은 투자 대상으로 추천해주면 주가가 뛰었다. 주가가 최고치에 이를 때쯤 투자은행과 관계자들은 주식을 팔아 현금을 챙겼다. 거품 가득한 주식은 퇴직연금이나 일반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2012년까지 미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400여개 중 80%가 우회 상장을 활용했다. 중국 부실기업 때문에 연금기금과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본 손실이 140억달러(약 16조6천억원)에 이를 거로 영화는 추정했다.

공모 관계를 세상에 폭로한 이들은 신중한 투자회사 경영자들이다. ‘지이오(GEO) 인베스팅’의 공동창업자 댄 데이비드는 비료회사 ‘차이나 그린 애그리컬처’에 대한 현장검증을 시도했다. 그는 이 회사 본사 공장 앞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344일 동안 촬영했다. 이를 통해 직원이 40명에 불과하고, 공장에 수송 트럭은 1대뿐이라는 걸 확인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장식한다. 2017년 1월 취임 직전 중국 온라인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을 만난 그는 “마윈 회장과 나는 큰일을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영화는 다음 장면에서,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뒤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 때 담당 변호사였던 제이 클레이턴을 증시 규제 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임명했다고 덧붙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윈과 손잡은 지 3년여 만에 틱톡을 미국 기업에 넘겨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미-중 관계가 몇 년 새 거꾸로 뒤집혔다는 촌평으로 그치기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트럼프의 중국 적대 정책이, 중국인들과 공모해 평범한 투자자들을 희생시킨 미 금융계보다 나은 결과를 낼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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