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현역 군인이 아닌 시민을 전쟁 등 비상사태 때 병력으로 동원하기 위해 예비군 조직을 운영한다. 한국은 310만명의 예비군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은 고종 때 중국 베이징이 서양 군대에 함락됐다는 소문에 주요 지역에 산성을 쌓고 주민이 자체 방어하는 향토예비군인 ‘만보군’을 구상했지만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정부는 한국전쟁 때 예비 전력인 국민방위군을 조직했다. 역시 부패한 군 간부들이 식량·군복 등을 착복해 이들을 굶기고 얼려 죽이는 ‘국민방위군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후 예비군 편성은 엄두도 못 냈다.
1961년 12월 향토예비군법을 제정했지만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는 ‘1·21사태’가 발생한 뒤에야 예비군을 조직했다. 대통령 박정희는 1968년 2월 250만 향토예비군 무장계획을 천명했고, 4월1일 조직 편성을 완료한 뒤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창설식을 열었다. 그해 6월24일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에 침투한 무장공비를 소탕하는 ‘현내 작전’에 처음 투입했고, 이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실전에 예비군을 수시로 동원했다.
훈련 기간, 보상비, 국회의원·학생 등 56개 직종 67만명에 이르는 ‘훈련 보류 특혜’ 등은 끊임없는 논란거리다. 3박4일이던 동원훈련은 2004년 2박3일로 단축했다. 착취 논란에 정부는 동원보상비를 해마다 인상해 2019년 3만2천원까지 올렸고, 2033년엔 21만원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군복만 입히면 개가 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군기가 문제된 시절도 있었다. 지난 2017년 지휘관의 말을 안 듣는 예비군을 처벌하는 ‘예비군 갑질 금지법’이 국회에 제출됐을 정도다.
저출산으로 현역 병력 자원이 감소하자 예비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조직은 진화하고, 훈련도 강화하고 있다. 2011년 특전사 출신 특전예비군부대를 창설했고, 각 예비군 소대에 저격수를 배치했다. 2016년 예비군 임무를 향토방위에서 국가방위와 지역방위로 확대했다. 최근 과학화 장비를 활용한 훈련대를 편성하고 ‘스마트 훈련 체계’도 도입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는 9월1일부터 실시할 예정이던 예비군 소집훈련을 취소했다. 예비군 도입 52년 만에 처음이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