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코로나19 백신이 나온다는 ‘희소식’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려도 커지고 있다. 몇년은 걸릴 것이라던 백신 개발이 앞당겨진 데는 11월3일 미국 대선 이전에 백신을 내놓으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닦달, ‘백신 전쟁’에서 승리를 차지하려는 미-중의 공방전, 돈과 명성을 거머쥐려는 제약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매우 가까운 시기에 백신을 가지게 될 것” “아마도 특별한 날(대선 투표일) 이전일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대선 전 백신 개발’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에게, 대선 전에 실제로 효과적이고 안전한 백신이 나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지지층이 투표소에 들어갈 때 ‘백신이 나왔으니 이제 코로나19 위기는 끝났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목표로 보인다.
중국은 11월이나 12월께 코로나19 백신 대량 접종을 시작할 것이라고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의 우구이전 수석전문가가 14일 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밝혔다. 세계에서 최종 3단계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9개 코로나19 백신 후보 가운데 5개는 중국이 개발 중이다. 중국은 이미 7월부터 의료진과 국경 근무 인원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또 백신이 개발되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타이, 베트남, 아프리카 국가들에 최우선으로 제공하겠다고 공언했다. ‘마스크 외교’에 이은 ‘백신 외교’를 예고하고 있다.
영미 제약사들도 ‘과속’ 중이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는 백신이 올해 연말 미 식품의약국(FDA)의 사용 승인을 받을 것에 대비해 이미 수십만회 접종 분량의 백신을 생산해놓았다고 밝혔지만, 임상시험 참가자들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의 임상시험에서도 참가자 한명이 횡단척수염 진단을 받은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의 모든 단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과학계 전문가들의 요구도 높지만, 제약사들이 응할 움직임은 없다.
백신 확보전은 이미 치열하다. 미국은 인구의 2배가 넘는 7억명분의 백신을 싹쓸이로 계약해놨고, 유럽 국가들이 그다음으로 많은 몫을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인구 60%에 해당하는 3000만명 분량의 백신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속 백신’의 안전과 효능에 대한 우려 속에서 백신 거부론자들의 음모론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북반구 겨울이 다가오면서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닥칠 거라는 암울한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백신 딜레마’가 깊어지고 있다.
박민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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