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 ㅣ 제주 출판사 ‘켈파트프레스’ 대표·미술평론가
추석 연휴를 검색하면 한참이나 자동완성 기능으로 제주도가 나란히 추천됐다. 연휴를 맞아 제주도로 여행을 가보려던 사람이나 이미 가기로 결정한 사람, 동향을 살피고 제주도 여행을 피하려던 이나 제주가 고향이라 가야만 하는 사람 등이 지난 연휴와 제주도를 연관 지어 검색했으리라 짐작한다. 뉴스엔 위중한 경고들이 가득했다. 닷새 남짓한 본격 추석 연휴 기간에만 20만명이 몰려, 한글날 연휴까지 셈한 11일 남짓 동안 총 30만명이 찾을 예정이라는 소식이었다. 제주도는 방문객은 체류 기간 반드시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특별행정절차를 가동하고, 방역지침을 어기면 치료비 환수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구상권 행사도 경고했다. 그간 60명이 채 안 되는 확진자를 관리하며 현재 도내 치료 중인 환자가 1명뿐이어서 청정지역으로 불리는 제주도로선 그간의 노력이 짧은 기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비상상황이었던 셈이다. 도민들도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주도 여행을 금지시켜 달라거나 관광객 수를 제한해 달라는 민원을 올렸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연휴에 제주에 방이 없다는 소식을 전하며 코로나19 재확산을 걱정하는 이도 있는 반면, 가족여행 계획을 알차게 꾸려 공유하는 이들도 있었다. “제주도 코로나 사태 최대 고비”라는 헤드라인 아래에는 “연휴맞이 제주도 가족여행 코스 추천!”이 함께 떴다.
마스크 착용 같은 기본적인 개인방역은 지키면서 연휴 기간에 국내여행이라도 하자는 게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국내여행을 하느냐 마느냐는 강제사항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남아 있었다. 정부에선 명절에 고향 방문을 자제하라는 슬픈 권유를 하고, 관광지에선 제발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워낙 특수해서 다들 좌충우돌이다. 물론 개인이 혹은 가족이나 친구가 모여 제주도에서 관광을 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연휴 대목의 수익과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에 포함될 손해가 교차되며 관광지에 사는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열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에 처한다. 인구 집결 밀도가 곧 코로나 재확산의 위험과 직결되는 상황, 잠재적으로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이 높은 수도권에서 이동한 관광객들이 찾는 제주 지역의 숙소, 카페, 식당도 전파 위험이 올라간다. 그리고 숙소, 카페, 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은 제주도민이다. 연휴에 제주 관광을 선택한다는 건 친척과 부모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위험은 줄이고, 오랜만에 여행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이다.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완전히 배제한 경우의 이야기다. 도민들은 그저 관광지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가게 문을 열고 닫고 손님을 맞이하는 일상을 이어가면 되는 것일까? 연휴의 대목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루를 정산하며 뿌듯한 날들을 이어갈 수 있을까?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는 2주간, 잠들지 않던 도시가 9시 이후에 순식간에 암흑도시로 변했다. 빈 택시만이 도로를 하릴없이 달리는 황량한 서울의 밤은 생경했다. 실제로 일상을 누리는 방식에 차질이 생기고 나서야 동네 가게들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알게 된다. 카페에 앉아 마음 편히 여유를 즐기고, 맛있는 음식점에서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 먹는 편의를 누리는 평범한 날이 또다시 위협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국외여행길이 막힌 것처럼 국내여행길이 막혀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2020년은 특별한 해인 만큼 연휴 계획도 특별한 방식으로 고민해보는 것도 좋겠다. 멋진 시 한 편을 짓는다거나, 공들인 그림 한장을 그려본다든가, 시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명작 <토지>를 완독해 버린다거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