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윤형의 신냉전 한일전 _10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P-3)가 한국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 인근으로 초저고도 위협비행을 한 사진을 국방부가 2019년 1월24일 공개했다. 일본 초계기가 고도 약 60m로 비행하면서 대조영함 우현을 통과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일본 초계기가 대조영함으로부터 방위거리 140도 540m 떨어진 곳에서 저고도 비행을 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많은 자위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경제제재를 받은 북한 어선을 한국 해군까지 출동시켜 국가 전체적으로 돕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런 광경을 들킨 것에 화가 나 레이더를 쐈다는 것이다.두달 전 한국 대법원이 내놓은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접어들던 2018년 12월21일 저녁 7시. 어둑해진 도쿄 이치가야 방위성 청사 현관에서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이 쭈뼛거리는 얼굴로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회견은 이날 이뤄진 이와야의 ‘두번째’ 기자회견이었다. 오전 10시 반에 열린 첫 회견에서 2019년도 방위예산과 관련해 15분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하루가 못 돼 다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이다. 이와야는 “20일 오후 3시께 (혼슈 중부) 노토반도 해역에서 경계 감시 중이던 자위대 P-1 초계기에 한국군 구축함이 화기관제레이더(한국에선 사격통제레이더로 부름. 이하 사통레이더)를 쐈다. 한국 쪽의 의도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레이더를 쏘는 것은 화기 사용에 앞서 이뤄지는 행위다. 이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와야의 갑작스러운 회견에 한국 국방부는 당일 밤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려 “군은 정상적 작전활동 중이었으며, 작전활동 간 레이더를 운용하였으나 일본 해상초계기를 추적할 목적으로 운용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이후 한·일 국방당국 간 신뢰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해상자위대 초계기 위협비행 및 한국 해군 레이더 조준’ 사태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 사태에 대한 한·일 군 당국의 발표와 언론 보도 등을 모아 보면, 일본 가나가와현 아쓰기에 주둔 중인 해상자위대 제4항공군 소속 해상초계기 P-1은 20일 동해에서 정기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P-1의 능동위상배열레이더가 한·일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독도 북동방 100㎞ 해상에서 복수의 확인되지 않은 물체를 포착해 낸다. 현장에 도착한 일본 초계기는 레이더에 잡힌 물체가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함(기준 배수량 3200t)과 해양경찰청 소속 순시선 삼봉호(5000t)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 구축함은 여기서 도대체 뭘 하던 것일까. 일본 초계기는 광개토대왕함의 고도 150m, 거리 500m 지점까지 저공비행해 다양한 각도에서 현장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촬영을 끝내고 멀어지던 무렵 대원들은 기기 경보음을 통해 기체가 광개토대왕함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사통레이더의 전파를 맞았음을 직감했다. 사실이라면, 한국이 우방국인 일본에 해선 안 되는 ‘적대 행위’를 한 셈이었다. 그 시각 한국 해군은 북한 선박이 표류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해당 해역에 출동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수색은 무려 10시간이나 이어지는 고된 작업이었다. 나중에 현장 영상을 확인한 고다 요지 전 자위함대 사령관은 <아사히신문>에 “군함이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일본 자위대기가 접근해 지휘관 이하 승조원들의 감정이 격해”진 게 아닌가 싶다는 감상을 남겼다. 일본의 첫 항의는 사건 다음날인 21일 오후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이뤄졌다. 한국 외교부는 “국방부와 협의하겠다. 항의 사실을 공표하지 말라”는 입장이었고, 국방부는 “북한 선박을 수색 중이었다. 수색용으로 쐈지만, 겨냥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본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당일 저녁 관련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이후 한·일 군 당국 사이에 처절한 ‘진실 공방’이 시작된다. 일본의 항의 직후 한국군이 보인 반응은 수색 과정에서 ‘모든 레이더’를 가동했다는 것이었다. <한겨레>는 21일 밤 속보 기사에서 “당시 파도가 높고 기상 조건이 좋지 않아 구축함의 모든 레이더를 총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사통레이더(STIR-180)에 붙은 탐색레이더(MW-08)가 360도 회전하며 쏜 신호가 탐지된 것으로 안다”는 군 관계자의 반응을 전했다. 이튿날인 22일 <연합뉴스>도 “조난된 북한 선박을 신속히 찾기 위해 화기관제레이더(사통레이더)를 포함한 모든 레이더를 가동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방위성은 22일 사통레이더는 “공격 전에 목표의 정밀한 방향과 거리를 측정하기 위한 것으로 광범위의 수색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국군이 쏜 것은 탐색레이더가 아닌 사통레이더임을 다시 한번 밝힌 것이다. 그러자 국방부는 24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본 측이 위협을 느낄 만한 어떤 조처도 없었다”고 강조하며 “사통레이더를 켠 적이 없다”, “일체의 전파 방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직후 나왔던 ‘모든 레이더를 가동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거둬들이면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이라는 역공에 나섰다. 그러자 방위성은 25일 재반박 자료를 통해 일본 초계기가 맞은 “전파 주파수대역과 전파강도 등을 분석해 볼 때” 광개토대왕함이 사통레이더를 “일정 시간 동안 계속, 수차례(3차례)에 걸쳐 쏜 사실이 확인된다”고 맞섰다. 결국, 27일 김정유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과 이케마쓰 히데히로 통합막료감부 수석참사관이 화상회의를 열어 사태 수습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이 무렵 한·일은 10월 제주 관함식에 참여 예정이던 일본 함정의 ‘욱일기’ 게양 문제와 12월 초 한국 해군의 독도 해상훈련 문제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던 상황이었다. 상호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진실이 가려지는 순간 어느 한쪽이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단두대 매치’(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질 리 없었다. 일본의 말대로라면, 광개토대왕함에선 우방국의 초계기에 화기관제레이더를 겨냥했다(‘록온’) 푸는 행위를 무려 세번이나 되풀이하는 용납할 수 없는 ‘군기 문란’ 행위가 벌어진 게 된다. 반대로, 한국의 주장이 맞는다면 일본이 자랑하는 최첨단 P-1 초계기가 심각한 기기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결론 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잘못이냐, 기계가 잘못이냐’는 이 질문과 관련해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가 있으나, 이곳에서 자세한 언급은 피하려 한다. 결국, 타협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생각은 달랐다. <산케이신문>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7일 이와야를 도쿄 총리관저에 불러 일본 초계기가 촬영한 현장 영상을 공개할 것을 지시했다. 이와야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난색”을 표했지만, 아베 총리가 “자위대원들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애매하게 넘겨버릴 수 없다”며 공개를 결단했다. 이렇게 공개된 방위성의 13분7초 분량의 영상을 보면, 6분4초 지점부터 “(광개토대왕함이) 에프시(FC·사격통제용) 전파를 쏘고 있다” “피하는 게 좋겠다” “엄청나게 대단한 소리(경고음)다”(전파강도가 강하다는 뜻)라고 반응하는 대원들의 음성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 군함이 포를 겨냥하는 등 ‘명백한 적의’를 보이진 않았다는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사태를 확대하자, 청와대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해를 넘긴 2019년 1월3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일본 초계기가 저고도로 근접 비행한 사건의 심각성을 논의하고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해 필요한 조처를 취해 나가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그 바로 다음날 국방부는 4분26초 분량의 ‘맞불 동영상’을 공개하며, “일본 초계기는 왜 인도주의적 구조작전 현장에서 저공 위협비행을 했냐”고 따져 물었다. 국방부의 질문대로, 왜 그랬을까. 일본 작가 아소 이쿠는 2019년 3월 월간 <분게이슌주>(문예춘추) 기고에서 일본 자위대 관계자들이 쏟아낸 묘한 추론을 싣고 있다. 이 무렵 해상자위대는 북한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세도리’(공해상에서 한 배에서 다른 배로 물건을 옮겨 싣는 행위) 방식의 밀수 행위 단속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남북이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상황 속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일본이 나서 감시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위성 누리집을 보면, 2018년 1월20일부터 2020년 1월12일까지 해상자위대의 호위함·초계기가 단속한 16건의 세도리 현장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소는 한국 해군이 정말 인도주의적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었다면, 일본 해상보안청에 공동수색 요청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많은 자위대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경제제재를 받은 북한 어선을 한국 해군까지 출동시켜 국가 전체적으로 돕고 있다”고 의심했었다고 전했다. 이런 광경을 들킨 것에 화가 나 레이더를 쐈다는 것이다. 지난 사건에 대한 앙금이 여전하던 2019년 1월23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오후 2시3분 시작된 신년 간담회를 40분 만에 긴급 중단했다.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자위대기가 한국 해군 군함에 또다시 저공 위협비행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격앙된 국방부는 한때 ‘자위권적 조처’까지 언급하며 지금까지 확인된 세건의 저공 근접비행 사태를 공개했다. 방위성은 앞선 21일 광개토대왕함 한척에 대해 세번이나 저공비행을 시도했음도 인정했다. 일본 자위대는 상대가 싫다는데 왜 이런 행동을 거듭했을까.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한국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니,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될 때마다 저공비행을 통해 정밀 감시를 시도한 것이었다. ※ 11회에선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응 수위를 높여가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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