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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노이로 가는 길목에서 한·일 다시 충돌하다

등록 2020-12-01 19:08수정 2020-12-02 02:41

길윤형의 신냉전 한일전 _11
2019년 신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거나 신년사, 연두소감을 밝히는 문재인 대통령(왼쪽), 김정은 위원장(가운데), 아베 일본 당시 총리(오른쪽).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일본정부인터넷텔레비전 화면 갈무리
2019년 신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거나 신년사, 연두소감을 밝히는 문재인 대통령(왼쪽), 김정은 위원장(가운데), 아베 일본 당시 총리(오른쪽).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일본정부인터넷텔레비전 화면 갈무리

답변이 나올 때까지 6초 정도 되는 긴 침묵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옅은 한숨을 내쉰 문 대통령은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며 3분45초에 걸친 긴 답변을 이어갔다. “일본 정부가 조금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삼권분립에 의해서 사법부의 판결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

한-일 관계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과 ‘해상자위대 초계기 위협비행 및 한국 해군 레이더 조준’ 사태로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지만, 이에 신경 쓰는 이는 많지 않아 보였다.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이후 ‘2·28 하노이 회담’이라 불리게 될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단을 내린 것은 이번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1월1일 새해를 ‘즈음해’ 자신의 조부와 부친이 잠들어 있는 금수산 태양궁전 영생홀에 헌화하고 참배했다. 그의 양옆을 1년 전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떨궜던 구순의 김영남과 ‘2인자’ 최룡해가 지켰다. 이 광경을 전하는 <노동신문> 1일치 3면 기사는 다사다난했던 2018년을 “사회주의 조국의 영광스런 70년 력사에 특기할 민족사적 사변들로 자랑스럽게 빛난” 시간이라 평가하며, 이 기세를 몰아 2019년 새해를 “희망차게” 시작하자는 포부를 전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함께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정상회담을 위한 결심을 밝혔다. 그는 “우리의 주동적이며 선제적인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처를 취하여 상응한 실천적 행동으로 화답해 나선다면, 두 나라 관계는 보다 더 확실하고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훌륭하고도 빠른 속도로 전진하게 될 것”이라며 “나는 앞으로도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은 김 위원장이 언급한 ‘미국의 상응하는 실천적 행동’과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해 나가는 과정’ 등의 용어들이다. 이 말엔 북한이 이미 취한 ‘주동적이고 선제적 노력’(핵실험 금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처’(종전선언)를 취하고, 나아가 ‘여러 실천적 행동’(제재 해제)에 나선다면 북한도 ‘보다 확실하고 획기적인 조처’(영변 핵 시설 폐기 등 비핵화 조처)를 통해 “하루빨리 과거를 매듭짓고 두 나라 인민들의 지향과 시대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관계수립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북한이 줄곧 주장해온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단계적 해법’을 수용해달라는 뜻을 다시금 미국에 정중히 요청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미국이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중략)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적 해법! 북한이 보기에 이것은 70여년 동안 대립해온 북·미가 “불미스런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었다. 미국의 원로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9월 펴낸 저서 <분노>를 보면, 2018년 9월6일 이런 구상을 트럼프에게 직접 호소하는 김 위원장의 친서를 확인할 수 있다. 우드워드가 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보낸 “가장 길고 자세한 편지”라고 묘사한 이 친서에서 북한은 “우리는 단계적 방법에 의해 예를 들어 ‘핵무기 기관’(Nuclear Weapon Institute·풍계리 핵실험장)이나 ‘위성 발사 지구’(Satellite Launch District·동창리 발사장)의 완전한 폐쇄, 그리고 핵 물질 생산 시설(Nuclear Material Production Facility·영변 핵 시설로 추정)의 불가역적인 공개 등 한번에 한번씩 추가적 의미 있는 조처를 기꺼이 취할 용의가 있다”고 적었다.(김 위원장이 이 서한을 보낸 것은 9월19일 나온 남북의 ‘평양공동선언’보다 이른 시점이었다. 북한이 그전부터 영변 핵 시설 폐기를 각오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국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친서가 전해진 직후인 10월7일 이뤄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서도 둘 사이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폼페이오는 평양 회담을 마친 직후인 저녁 7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2차 정상회담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지만, 성과는 그뿐이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이날 북-미 회담에 대해 “김은 우리의 경제제재에 대해 오랫동안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자기 측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거의 내놓지 않았다”는 냉담한 평가를 내렸다. 당시 나온 한·미·일 3개국 언론 보도를 모아 보면, 미국은 북한에 여전히 핵과 관련된 시설의 ‘신고’(북이 핵 시설을 일제 신고하면 북이 고집하는 ‘행동 대 행동’의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를 요구했고, 북한은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팽팽하게 맞섰음을 알 수 있다. 이 회담의 결과를 전하는 <노동신문> 8일치 1면 기사를 봐도, 합의된 것은 “2차 조-미 수뇌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을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한다는 것뿐이었다.

이후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미국을 흔들기 위한 북한의 처절한 인정투쟁이 시작된다. 북한은 폼페이오가 제안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 외무성 부상 간의 오스트리아 빈 실무회담을 무산시켰고, 11월8일로 예정됐던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일정을 일방 취소했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듯 <아사히신문>은 12월12일 복수의 미국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이 “2번째 정상회담을 새해 초에 열자고 타진하고 있지만, 북한의 회신이 없다”고 전했다. 북한은 나아가 16일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의 담화를 통해 미국이 “제재 압박과 인권 소동의 도수를 전례 없이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타산했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며 공개 불만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비건 등 국무부 ‘비둘기파’들의 내부 투쟁이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매우 ‘미세한 변화’가 나타났다. 북이 공개 담화로 불만을 쏟아낸 지 사흘 뒤인 19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비건은 몰려든 기자들에게 멋쩍게 웃으며 가벼운 목례를 건넨 뒤 양복 속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다음주 워싱턴에 돌아가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민간·종교단체의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다.” 이어, 21일엔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예정대로 여는 데 동의했다. 다음날인 22일엔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매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북한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연설을 준비했다가 취소했다는 미 <에이비시>(ABC)의 보도가 이어졌다. 예고됐던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은 26일 판문역에서 열렸다. 오전 9시57분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내빈이 입장하자 북한 취주악단이 연주하는 ‘민족대단결가’가 행사장에 울려 퍼졌다. 김윤혁 북 철도성 부상은 “통일의 기적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질 그날을 위해 각오를 돋고 위풍과 역풍에 흔들림 없이 똑바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시 시작된 정세 변화를 일본은 불안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월4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정세는 지난해 6월 미-조 정상회담 때보다 더 역사적인 전환점에 접어들고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단하게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9일 대법 판결에 대한 일본의 시정 요구를 무시하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1965년 체결한 ‘한-일 청구권 협정’ 3조1항에 근거한 분쟁해결 절차인 ‘외교 협의’를 요청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다음날인 10일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한-일 관계의 앞날을 점칠 수 있는 분수령이었다. 이 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머잖아 개최될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한반도 평화를 확고히 다질 수 있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밝히면서도, 한-일 현안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다카노 히로시 <엔에이치케이>(NHK) 기자가 이날 질문에 나선 21명의 기자 가운데 18번째로 마이크를 쥘 수 있었다. 사실, 문 대통령이 지목한 이는 그 뒤에 있던 로라 비커 <비비시>(BBC) 기자였다.

“어제 일본이 한국 쪽에 협의를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고려하고 있나?”

답변이 나올 때까지 6초 정도 되는 긴 침묵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옅은 한숨을 내쉰 문 대통령은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며 3분45초에 걸친 긴 답변을 이어갔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문제들이 아니다. 과거의 불행했던 오랜 역사 때문에 만들어지고 있는 문제이다. 저는 일본 정부가 그에 대해 조금 더 겸허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중략) 삼권분립에 의해서 사법부의 판결에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 (중략) 그런 문제를 (일본 정치인들이)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삼아서 미래지향적 관계까지 훼손하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본은 말 그대로 경악했다.

※12화에선 ‘하노이의 실패’에 대해 다룹니다.

길윤형 | 통일외교팀장.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초년 기자 시절부터 강제동원 피해 문제와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갖고 여러 기사를 써왔다. 2013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한겨레>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다양한 정책을 가까이서 살펴봤다. <나는 조선인 가미카제다>, <아베는 누구인가>, <26일 동안의 광복> 등을 썼고,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아베 삼대>를 번역했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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