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의 한마디 “선생님,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나의 오랜 기다림과 자신과의 사투를 모두 알아주는 듯한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나를 찾아 또 한 해를 이겨낼 힘을 가진다.
김슬기ㅣ방과후 강사
그런데 회사에서 자료 요청이 온다. “샘, ○○○파일 메일로 부탁해.”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지난 8개월 동안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던 회사가 출근일도 아닌데 자료 요청을 하다니. 화가 났지만 혹시나 모를 불이익을 걱정했다. “모든 자료는 학교 컴퓨터에 있고, 저는 이번 주 근무가 아니”라고 했더니 답이 없다. 나는 근무 때와 다르지 않게 학부모들과의 상담과 수업 조정으로 바빴다. 그러나 무급이다. 왜일까?
이런 많은 의문들이 들긴 하지만 나는 방과후 강사들 중에서도 다행인 것 같다. 그렇게 2개월을 우울하게 보낸 뒤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하고 학교에 긴급 돌봄과 생활도우미 활동을 하며 그래도 월 70만원대의 생활비는 벌 수 있었다.
그러다 8월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강사·서포터스 모집 공고를 접했다. 정부에서 코로나로 인해서 전 국민 디지털 역량이 너무 큰 차이가 난다며 무료로 디지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강사와 서포터즈를 모집했다. 나는 컴퓨터 강사이기에 더 유리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신청하고 인공지능(AI) 면접도 보았다. 생애 처음 하는 ‘AI’ 면접은 나의 안일함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내 삶과 내 수업 방식에만 만족하며 살았구나, 세상이 또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도 9월부터 일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디지털 강사도 정직원이 아닌 일정기간 비정규직이다. 나는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할 인생인가? 그래도 고용보험도 넣어주고 매달 우수강사 수상도 하고 교육 기간에 교육비도 주기에 나는 오랜만에 사람 취급받는 거 같았고, 사업이 더 잘 알려져 많은 효과가 생기고 계속 유지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기도 했다. 단기 근무지만 사람 냄새 나는 느낌이 얼마 만이던지 너무나도 즐겁게 일을 했다. 와중에 회사에서 한번 연락이 왔다. 추석을 맞이한 것도 있겠지만 현재 디지털 역량 교육에 대해 자료나 지식을 잘 습득해두라는 취지의 안부 글이었다.
10월의 마지막 주는 11월부터 다시 시작되는 방과후 수업의 등록을 받는 주간이었다. 월요일 오전부터 일찍 일어나 오전 9시부터 올 문자를 기다리며, 초조하기도 하고 기대감도 가지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수십 건 이상의 문자와 수십 건 이상의 통화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겠지만 달랑 십여 건의 문자와 두 번의 통화로 마무리가 됐다. 다행히 3월에 신청했던 기존 수강생들에게 우선권을 주라는 학교의 배려로 인원수가 반토막까지는 아니었지만 등록 기간에 맛본 이런 씁쓸함은 현재 있는 학교에만 5년 근무하면서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마냥 씁쓸함과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년 나와 함께 수업하던 어느 학생의 학부모와 통화를 하는데 눈물이 왈칵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너무나도 그리운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지난 8개월을 버텨오면서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보잘것없는 직업을 가졌던 것인가 하는 후회와 좋지 않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직업을 전향하는 것이 답일까? 그때 누군가 그랬다. 힘들 때마다 직업 바꿀 거냐고. 다른 직업을 찾으려 해도 나의 나이와 수많은 경력, 이력서 두 장을 꽉 채운 자격증들이 이직하려는 직장에서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기존에 받던 월급을 채워줄 수 있는 수준의 기업에는 더 취직하기 힘든 나이이고, 작은 소규모 업체라면 거기도 지금과 마찬가지인 상황일 거다. 정규직이 아닌데다 무급의 노동을 요구하는 것 말이다.
하던 일을 하지 못하던 8개월 동안 정수기 판매부터 일반 사무실은 물론 교습소를 차릴 생각까지 정말 1부터 10까지 다 알아보고 다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내가 내린 결론은 다시 강사였다. 스스로 더 실력을 쌓고 어디서든 찾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 다만 방과후 한 곳만 올인 대신 투잡을 생각하게 됐다. 방과후 강사가 아닌 진짜 프리랜서 강사가 되리라 마음먹고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게 됐다.
이러든 저러든 11월 방과후가 시작되면서 나는 나의 소중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통해 다시 나의 위치와 역할과 자부심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시간 조정이 어려워 수업을 듣지 못해 내년을 기약하는 학생 학부모의 한마디 “선생님,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나의 오랜 기다림과 자신과의 사투를 모두 알아주는 듯한 그 한마디에 나는 다시 나를 찾아 또 한 해를 이겨낼 힘을 가진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0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응모작입니다. 해마다 수상작만 <한겨레>에 실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견뎌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마다의 고충이 담긴 ‘노동일기’로서 응모작 몇 편을 더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