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가운데) 등 원로 언론인들이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대한 원로 언론인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성한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오른쪽은 유숙열 80년대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더불어민주당이 24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회부했다. 25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유언론실천재단, 개혁적 시민단체, 진보적 법조인 단체 등이 잇따라 밝힌 우려와 입법 유보 요구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나만 옳다’는 식의 아집과 독선이 아닐 수 없다.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은 터에 언론개혁운동 단체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든 뒤 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인다면 그 후폭풍은 책임지고 싶어도 책임질 수 없을 만큼 심각하고 막대할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23일 자유언론실천재단의 기자회견은 이전에 있었던 여느 단체들의 의견 표명보다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 해직된 뒤 언론자유의 본질을 숙고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평생 외길을 걸어온 언론운동 1세대 원로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단체다. 이분들이야말로 언론개혁 입법을 가장 일관되게 주창해왔다. 그런 분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1987년 이후 어렵게 얻어진 언론자유에 심각한 제약과 위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흥적인 입장 표명이 아니다. 독재정권과 온몸으로 맞서 싸워 언론자유를 쟁취한 경험과 연륜이 뒷받침된 오랜 고뇌와 숙의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언론자유 훼손이라는 위험성 외에도 고의·중과실 추정에 대한 모호한 기준과 입증 책임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논란, 법의 실효성 등 곳곳에서 쟁점들이 존재한다”며 “지금 법안은 실익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조국 방지법’ ‘언론 재갈법’ 등으로 낙인찍으며 대안 제시 없이 정략적 주장만 거듭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민주당이 언론운동 원로들의 ‘충심’과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반대를 위한 반대’조차 식별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 취지에 대한 반대와 법안 일부 조항에 대한 반대를 정확히 구분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23일 성명을 내어 이번 개정안이 언론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법률적으로 꼼꼼하게 짚고 민주당의 유례 없는 ‘입법 속도전’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지만, 법 개정 취지에 대해서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런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언론개혁운동 세력이 특정 법안에 대해 언론 기득권 세력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도록 한 것부터가 민주당의 큰 잘못이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24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대선을 앞두고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유 전 총장은 <한겨레>에 “국민의힘이 지난해 원 구성 당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독식하도록 몰아갔고 결국 민주당은 4·7 재보선에서 심판을 받았다”며 “지금도 상황이 비슷하다. 대선이 6개월 남짓 남았는데 열성적인 지지층에 끌려다니면 또 한번 민심의 회초리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의 원로들을 비롯한 여러 언론유관단체들과 정의당까지도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국회 내 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해 언론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는 조항들을 바로잡고 허위·조작보도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 구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놓으려면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길게 보면 그것이 오히려 빨리 갈 수 있는 길임을 민주당은 잊지 말기 바란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강행 처리를 중단할 것을 민주당에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