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0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2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CEO) 제주하계 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전경련 제공
윤석열 정부가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신발 속 돌멩이’를 없애겠다며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을 펴고 있는 가운데, 노동분야에서도 국무총리실 차원의 대대적인 규제완화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토 대상에는 해고 사유 확대,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등 노동계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올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검토 단계에서 걸러질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노동권 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보편적인 규범들마저 혁파해야 할 규제로 여기는 정부의 인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겨레>가 입수해 8일 보도한 국무조정실의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 목록에는 해고 사유 확대, 취업규칙 변경절차 개선,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조항 삭제, 기간제·파견 활용 범위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등이 담겨 있다. 하나같이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권에 큰 영향을 미칠 민감한 사안이다. 노동계로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 자명하다. 실제 ‘해고 사유 확대’와 ‘취업규칙 변경절차 개선’의 경우,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였다가 노정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 노동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인 ‘9·15 노사정 대타협’이 폐기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덩어리과제’ 목록에는 그동안 경영계가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해온 내용들이 살뜰하게 담겨 있다. ‘재계 민원 리스트’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정부 검토 목록에 오른 항목 가운데 상당수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3월 작성한 ‘신정부에 바라는 노동개혁 방안’과 겹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무조정실의 이런 행보는 노동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노동개혁 방향과도 어긋난다. 노동부는 노사관계 법·제도 전반의 개선을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이정식 장관도 지난 6월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노동개혁은 어느 일방의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국무조정실이 노동분야 규제완화를 강조해온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중에 따라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노동부를 ‘패싱’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노동개혁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차근차근 실행하는 것이 순리다. 정부가 재계의 대변자 노릇을 자처하면서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